[정책] 탕평책과 하마비

등록일 2002.11.26 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탕평책
2.탕평비
3.하마비

본문내용

■탕평책(蕩平策)
조선 후기 영조(英祖)가 당쟁을 해소하기 위해 당파간의 정치세력에 균형을 꾀한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정책. 탕평이라는 말은 《서경(書經)》 <홍범조(洪範條)>의 ꡐ無偏無黨王道蕩蕩 無黨無偏王道平平ꡑ이라는 글에서 유래하였다. 신임옥사(辛壬獄事)의 와중에서 왕위에 올라 당쟁의 폐단을 뼈저리게 겪은 영조는 1724년 즉위하자 당쟁의 폐단을 지적하고 탕평의 필요를 역설하는 교서(敎書)를 내려 탕평정책의 의지를 밝혔다. 영조 6년(1730) 그의 옹립에 공이 컸던 노론(老論)의 강경파 영수 민진원(閔鎭遠)과 소론(少論)의 거두 이광좌(李光佐)를 불러 양파의 화목을 권하는 한편 그의 시책에 호응하지 않는 호조참의(戶曹參議) 이병태(李秉泰), 설서(說書) 유최기(兪最基) 등을 파면하였다. 또한 노론의 홍치중(洪致中)을 영의정, 소론의 조문명(趙文命)을 우의정에 임명함으로써 당파를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하고 일반 유생(儒生)들의 당론에 관련된 상소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1742년 성균관 입구에 ꡐ탕평비ꡑ를 세우는 등 당쟁의 해소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와 같은 영조의 탕평책에 의한 화해기운 조성에도 불구하고 뿌리깊은 당파의 대립은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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