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의 왕위 찬탈 “계유정난(癸酉靖難)”
- 최초 등록일
- 2012.07.01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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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학교과제로 했던 레포트입니다.
3권의 책과 자료를 조합해만든것입니다. 인터넷에 중복자료 없을꺼에요...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본론
1) 어린 단종의 즉위와 왕위를 찬탈하는 왕숙
2) 계유정난의 사건 분석
3) 수양대군의 정국 전복과 왕위 찬탈
Ⅲ. 결론
본문내용
Ⅰ. 들어가며(緖論)
조선전기사중 레포트 주제를 정하라면 ‘세종대왕(世宗大王)’ 이나 ‘계유정난(癸酉靖難)’에 대하여 하고 싶었기에 수업시간에 ‘계유정난’의 레포트 주제를 받았을때 상당히 만족도가 높았다. 그 이유는 근래에 화제가 되었던 TV드라마 ‘공주의남자(公主의男子)’와 ‘인수대비(仁粹大妃)’를 통해 ‘계유정난’이 다시금 사회에 이슈가 되었었고 나 또한 ‘공주의남자’를 재미있게 보았기에 비판적인 시각으로 TV드라마와는 다른 역사적 실제 모습들과 그 내용에 관해 공부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였다. 이제 수양대군이 추락한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였다는 대중매체의 미화(美化)된 영웅적인 모습만이 아닌 ‘계유정난(癸酉靖難)’의 실제 배경과 내용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本論)
1) 어린 단종(端宗) 의 즉위(卽位)와 왕위(王位)를 찬탈(簒奪)하는 왕숙(王肅)
단종은 1452년 5월 18일 경복궁 근정전(景福宮 勤政殿)에서 즉위식을 가졌다. 부왕 문종(文宗)이 서른아홉 살의 한창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지 엿새만이었다. 새로 왕이 된 단종은 겨우 열두 살에 불과했다. 왕위에 오른 단종은 아직 혼례(婚禮)를 치르지도 않았다. 그를 낳아 준 대비도 이미 죽고 없었다. 어린 단종을 구심점으로 정치적 안정을 이루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았다.
<중 략>
3) 수양대군의 정국 전복과 왕위 찬탈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통해 대립관계에 있던 의정부 대신들을 모조리 살해 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수양대군은 ‘영의정부사판이병조겸내외병마도통사(領議政府事判吏兵曹)’라는 어마어마한 직함을 얻었다. 이는 의정부의 최고 책임자인 영의정이 되고, 동시에 문신과 무신의 인사 부서인 이조판서(吏曹判書)와 병조판서(兵曹判書)를 겸임하며 아울러 내외의 군사들을 통솔하는 내외병마도통사(內外兵馬都統使)를 맡는다는 것이었다. 조선 조 관료 조직의 최고 요직을 모두 장악한 것이다.6)
계유정난은 중앙 정치 세력 및 국정 운영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은 살해되거나 유배에 처해지는 등 철저히 숙청(肅淸)되었다. 이 공백(空白)을 정난공신(靖難貢臣)을 비롯한 세조 공신들이 메워갔다.
참고 자료
이이화, 《한국사이야기9-조선의건국》, 한길사, 2004, 단종실록편 참조
김제방, 《조선왕조사》, 문학공원, 2007, 제1편 4부 세조의 왕권확립편 참조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웅진지식하우스, 2004, 제6대 단종실록편 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