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A+】소금
- 최초 등록일
- 2012.06.30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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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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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소금의 정의
소금의 종류
소금의 역사
소금의 역할
소금 권장량
과잉문제
느낀점
본문내용
소금의 역사
소금이라는 우리말은 농경사회에서 꼭 필요한 `소`(牛)와 `금(金)`처럼 귀하다는 뜻으로 `작은 금` 즉, 소금(小金)으로 불렸다고 전한다. 고려시대 이전의 우리나라의 소금에 대한 기록이 있는 문헌은 많지 않다.≪三國志魏志東夷傳≫에 의하면 고구려에서 소금을 해안지방에서 운반해 왔다는 기록이 있으며, 따라서 신라나 백제에서도 고구려와 같이 해안지방에서 소금을 얻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이외에 삼한시대에 작은 갯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었다는 이야기와 고구려 때 노예들이 생선과 소금을 상류층에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의 문헌에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고려 태조 때 설치된 도염원(都鹽院)에서 소금 전매제가 시행되었으며, 당시에 소금을 굽는 곳이 612개소, 소금을 굽는 가구가 892가구가 있었다.또한 문종 때부터는 국가가 직접 소금 가마솥을 소유하여 소금을 제조하였고, 민간에게 배급도 하고 판매도 하였다.고려 후기에는 귀족계층에서 소금 가마솥을 사적으로 소유하여 염업을 사영화함으로써 염정(鹽政)이 혼란스러운 때도 있었는데, 충선왕 때 다시 각염법을 개정하면서 엄격하게 통제되었고, 정해진 배급 일에만 백성들에게 소금을 팔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왕조실록에는 서해안, 남해안을 중심으로 소금생산이 활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의 소금을 생산하는 방식은 자염방식이었고, 왕실 소유의 전매제가 시행되었다. 소금의 최대 생산지는 평안도에서 전라도에 이르는 서해안의 갯벌로 대표적인 지역이 전라도 `부안`과 충청도`태안`이었다. 그 당시에는 연안의 주구마다 염장을 설치하여 관가에서 소금을 구웠으며, 백성들은 쌀과 천으로 소금과 교환을 하였었는데, 1411년에 이 염장염미법(鹽場易米法)은 폐지되었다. 1907년 우리나라에 도입된 소금제조 방식은 천일염 방식으로 현재 인천광역시 북구 십정동 558-7 번지인 주안에 만들어진 주안염전이 최초의 염전이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천일염전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등 서해안에 집중적으로 개설되어 천일염을 만들어냈으며, 일본 정부가 그 소유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1955년 소금의 자급기반이 조성되기 전까지는 정부에서 전매제를 시행하였었고, 1961년에 염전매법이 폐지되면서는 이제까지의 국유염전과 민영업계로 양분되었다가, 1962년에는 모두 민영화되어 소금이 제조, 판매되고 있다.
참고 자료
소금 [salt ] | 네이버 백과사전
소금의 효능|작성자 대복
출처 : 민족생활의학(장두석 저) 책 등을 인용 정리한 것임 [출처]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소금|작성자 참 좋은
*소금의역할~**|작성자 깬니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