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촌락문서를 통해본 신라의 지방사회
- 최초 등록일
- 2002.11.24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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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신라의 달밤에 비추어본 촌락문서-
서론
본론
하나. 촌락문서의 발견경위와 작성연대
둘. 孔烟해석을 통한 가족의 규모와 농민의 토지소유
셋. 計烟과 조세제도
넷. 촌락지배 방식과 문서의 성격
결론
부록
촌락문서의 내용(A촌의 실례)
본문내용
서론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이어져 오면서 많은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일본에 또는 외국으로 유출되었다. 그 중 일본 정창원의 절간 벽 속에서 발견된 신라 촌락문서는 지금까지 유례가 없던 것으로서 당시 촌락사회의 모습뿐만 아니라 신라중앙정권의 지방통치 모습까지 알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우리가 신라 촌락문서에 흥미를 가졌던 것은, 좀 더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사료를 통해 당시 시대상황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우리가 신문을 읽으면서 오늘날의 사태를 파악하고 알 수 있듯이 촌락문서를 통해 8C 전후의 신라의 촌락사회모습부터, 지방통치제, 조세제, 토지제 등을 알아보고자 한다.
본론
하나. 촌락문서의 발견경위와 작성연대
♠ 발견경위
촌락문서는 1933년 일본 나라시에 있는 동대사(東大寺) 정창원(正倉院)에서 발견된 것으로, 1953년에 처음 학계에 소개되었다. 동대사는 751년 대불전이 완성되었고, 정창원은 756년에 지어졌다. 정창원 중창(中倉) 계하(階下) 중간 시렁에는 경질 13매가 수납되어 있었는데, 이 가운데 파손된 ‘화엄경론’질을 수리할 때 질(帙) 내부에 있었던 포심(布心)에 배첩(褙貼)된 종이가 있어 떼어 보니 촌락문서였다고 한다.
문서는 2장으로 되어 있고, 크기는 가로 58cm, 세로 29.6cm이다. 약 1,600여 자로 되어 있는데, 한문과 이두를 병용하여 해서로 기재되어 있고, 중간에 약간의 결락이 있다. 문서 2장의 글씨체는 같은 것으로 보아 같은 지역의 사례를 적은 문서로 볼 수도 있으며,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정리했기 때문에 글씨체가 같다고 볼 수도 있다. 문서는 사진으로 촬영한 후 다시 원상대로 돌려놓아 현재 실물은 볼 수 없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