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개관 및 출토유물
- 최초 등록일
- 2012.06.19
- 최종 저작일
-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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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익산 미륵사지와 석탑, 금제사리호 및 봉안기 등 유물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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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미륵사 복원도)
『三國遺事』무왕조에 따르면 미륵사는 백제 30대 무왕(600~641)의 치세 때 왕후인 신라 선화공주에 건의에 의해 건립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영조 때에 강후진이 쓴『臥遊錄』에
“미륵사에 오니 농부 3명이 장난삼아 서쪽에 두른 벽으로 탑에 올라가 누워있다 … 탑이 100년 전쯤에 벼락이 떨어져 절반이 허물어졌다.”
라는 내용을 볼 때 조선후기에 이르러 미륵사는 사찰의 기능을 잃고 폐허가 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는 사적 제150호로 지정된 사찰의 터와 국보 제11호인 서탑, 보물 제236호인 당간지주가 남아있으며, 1974년 발굴조사 때 확인된 동탑지에 옛 석재를 사용하여 복원한 동탑이 존재한다. 또한 2009년 서탑 해체조사 및 보수정비 과정에서 금제사리호와 금제사리봉안기 등 미륵사 창건과 관련된 중요한 유물들이 수습되어 『삼국유사』무왕조의 미륵사 창건 설화 내용의 사실여부와 관련지어 많은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 창건설화
미륵사의 창건과 관련된 내용은 『삼국유사』무왕조에 실려 있다. 무왕조에 나타난 미륵사 창건설화를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다.
“무왕이 부인(선화공주)과 함께 사자사에 지명법사를 만나러 행차하였는데, 그들이 용화산 밑 큰 못가지에 이르렀을 때 그 못 속에서 미르삼존불이 출현하였다. 그 것을 보고 왕가를 멈추게 하여 경배하였는데 그 때 왕후가 왕에게 ‘이곳에 큰절을 세웠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라고 하자 왕이 이를 수락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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