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김남천의 삶과 문학입니다
목차
1. 작가 김남천
1.1 생애
1.2 작품활동
2. 1930년대의 상황
3. 창작방법론
4. 작품분석
4.1 처를 때리고
4.2 대하
5. 문학사적 의의
※참고문헌
본문내용
1.작가 김남천
1.1 생애
본명은 효식으로 김남천은 필명이다. ‘남’을 빼고 김천이라고도 불렸다. 김남천은 1911년 평남 성천에서 김영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일제 시대 군청공무원이었고, 그의 장인은 일제시대 군수를 지냈다고 하니 동경유학 이전의 생활은 대체로 풍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때에 반 친구들 6, 7인과 더불어 [월역]이라는 동인지를 만들었는데, 이때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 가운데에는 후에 김남천을 카프 동경지부에 관련을 맺어 준 한재덕도 포함되어 있었다.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931년 제명되었다. 재학 중이던 1929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에 가입했다. 1930년 <영화운동의 출발점 재음>으로 평론활동을 시작한 문예운동의 볼셰비키화를 주장하고 평양고무공장 파업에도 관여하였다. 그 후, 31년과 34년 카프 제1ㆍ2차 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출옥 후 감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편<물>(1933)을 발표, 문학적 실천에서의 계급적 주체의 문제로 임화와 논쟁을 벌였다. 1935년 5월에는 임화와 카프 해체계를 경기도 경찰국에 제출하였다.
<중 략>
5.문학사적 의의
김남천의 문학은 이른바 카프계열 문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에서 의의를 가진다. 그는 카프 강경파의 대표적 인물이었고, 해방 직후 좌익 문단의 주도적 인물이었다. 김남천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고 동경 유학까지 하여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장배경과 사상의 괴리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카프와 프로문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지도자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를 논하지 않고서는 카프 문학을 논할 수 없을 정도의 자리에 까지 서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남천은 어쩌면 당연한 문학사적 의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김남천의 창작방법론의 변모과정은 일제 치하에서 내놓은 최선의 창작론이자 최초로 창작론을 정립하였다는 데에서 의의를 가진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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