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
- 최초 등록일
- 2012.06.03
- 최종 저작일
- 2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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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학농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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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동학동민운동의 배경
갑신정변 이후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대립은 대단히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일본은 조선에서의 위치가 약화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일본은 정치적 위치가 약화되자 경제적 침투로 눈을 돌리면서 개항이후의 경제적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영국산 면제품을 일본이나 중국에서 싸게 들어와 조선에서 비싼 값으로 파는 중계무역을 행하고, 조선에서 나는 금과 콩, 쌀 등을 대량 일본으로 유출시켰다. 대량의 쌀을 매점하여 고리대의 수익을 올리고, 다량의 쌀을 일본으로 유출시킴으로 국내의 쌀값은 폭등하고, 흉작까지 겹치면서 미곡 수출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면서 조선정부는 방곡령을 수차례 내렸지만 일본은 한일통상장정을 들먹이며 문제 삼았다.
청의 정치 간섭은 강화되어 군대와 원세개가 서울에 주둔하며 그 위세는 더 하였고, 조선정부의 자주권은 크게 위협 당하였다. 경제적으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고 경제적 침투를 강화하였다. 이 때 청의 상인들은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범위를 넓혀갔다.
이러한 가운데 러시아가 조선 문제에 개입하여 열강의 대립은 더욱 복잡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남하 정책은 1860년대 베이징조약으로 연해주를 차지하여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과 접하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군항을 개설하며 극동의 남하정책의 기지로 삼아 조선의 침략을 가시화 하였다. 영국도 러시아의 조선침투를 막기 위해 함대를 보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 이 같이 열강의 분쟁이 조선을 둘러싸고 치열해지자 조선을 중립화하여 이를 막자는 의경이 대두하였다. 독일 부영사 부들러가 조선을 스위스와 같이 영세국외중립국으로 만들자고 전했으며, 개화당의 유길준은 강대국이 보장하는 중립론을 구상하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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