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사회의 지배제도
- 최초 등록일
- 2012.06.03
- 최종 저작일
- 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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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의 중앙 정치 제도는 성종 때 당제를 채용한 3성 6부제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건국 초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는 태봉의 관제를 답습하여 광평성(廣評省), 내봉성(內奉省), 순군부(徇軍部), 병부(兵部)를 근간으로 한 정치제도를 사용하였다.
목차
1.중앙 정치제도
2. 지방제도
3.군사제도
4.교육제도 · 과거제도
본문내용
건국 초 지방에 수령이 파견되지 못하고 今有(금유), 祖藏(조장)의 조세를 관장하는 사자를 둘뿐 호족의 자치에 맡김→성종2년(983) 12목 설치, 지방관 파견→1018년 현종 9년 4도호, 8목, 56지주군사 28진장, 20현령의 외관조직개편, 지방제도 일단락.
전국에 약 500여개의 군현이 존재하였지만 모든 군현에 외관이 파견된 것은 아니었다. 속현은 수령이 설치된 주현에 예속되어 중앙의 간접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주현의 수가 적지 않아 일률적 통제가 곤란하여 큰 군현을 계수관 계수관-중앙과 지방군현 사이 연결하는 중개적 기능 담당, 예종과 인종 대 이후 5도 안찰사제를 성립하면서 역할의 약화
으로 삼아 제한된 기능에서 중간 기구의 역할을 하였다. 14개 경, 도호부, 목이 계수관으로서 관내 일반군현의 통할은 일반 행정 전반이 아닌 제한된 향공의 선상이나 외목수의 추검을 맡았다. 고려의 계수관은 시대에 따라 증감이 있으나 3경 4도호 8목의 외관이 그 기능을 담당하였다.
외관의 증파에 따라 주현의 수가 증가하자 군현 사이에 중간기구로 5도 양계를 설치하여 북부 지방에 양계, 남부지방의 5도를 설치하여 군현도 방어 사주와 진으로 구성되어있는 양계에 병마사를 5도에는 안찰사를 파견하여 도내의 군현을 담당하는 상부 행정기구로 삼았다.
5도의 밑에는 군현도 주, 부 , 군, 현이 마련되면서 중간 기구 지역에 따라 도와 계의 차이가 있고, 왕경 주변의 경기는 개성부에서 직접통치하는 등 지배 장식이 일원화 되지 못하였다. 군, 현에는 지방 출신의 호장, 부호장이 향리로 임명되어 수령 밑에서 말단 행정을 담당하였다. 향리는 주, 현뿐 아니라 외관이 없는 속현이나 부곡에 설치되었는데 향리는 원래 호족 출신으로 조세, 부역, 소송, 행정, 사무를 맡으며 실권이 커 백성의 침탈 피해가 커 이들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지방출신의 중앙고관을 사심관으로 삼아 통제하였다. 또한 향리 자제를 기인으로 사망 상경 숙위케 하며 향리는 지방호족의 지위에서 하락하였다.
<중략>
고려는 건국한 이래로 호족과 그 출신의 공신들의 세력이 강하여 왕권은 늘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광종은 이 같은 현상을 타파하기 위하여 일련의 개혁정치를 단행하였는데 과거제의 도입은 그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거는 한문학이나 유교 경전의 능력을 시험하여 그 성적에 따라 관인을 선발하여 정치적 비중을 차지하던 무훈 공신들의 세력은 약화되는 대신에 군주에게 충성을 본분으로 하는 신진인사들이 기용되어 왕권은 안정을 기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한국사통론(삼영사)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솔)
다시찾는 우리역사(경세원)
고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