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5대 궁궐
- 최초 등록일
- 2002.11.22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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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경복궁
1. 경복궁의 역사
2. 위 치
3. 개 요
4. 부속건물
Ⅱ 창덕궁
1. 창덕궁의 역사
2. 위 치
3. 개 요
4. 창덕궁의 배치와 특성
5. 부속건물
Ⅲ 창경궁
1. 창경궁의 역사
2. 위 치
3. 개 요
4. 부속건물
Ⅳ 경희궁
1. 경희궁의 역사
2. 위 치
3. 개 요
4. 부속건물
Ⅴ 덕수궁
1. 덕수궁의 역사
2. 위 치
3. 개 요
4. 부속건물
본문내용
1. 경복궁의 역사
태조 때 창건된 조선의 정궁
임진왜란의 병화로 전소되는 비운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 남쪽 기슥에 정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경복궁(사적 제 117호)은 태조 4년(1395)에 창건된 조선의 정궁이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건국한 다음 천도할 것을 결심하고 즉위 3년에 한양 도읍을 결정하여 10월 천도하고 다음해에 경복궁을 이룩하였다. 이 궁은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의 병화로 전소되는 비운을 맞았으며 그 후 왕궁으로서 불길하다는 이유로 273년간이나 중건되지 못하였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전후해 일어났던 재화, 병화로 인해 모두 회진되고 말았으며 국력의 쇠약은 그 후 273년간이나 춘풍추우 속에서 이 궁궐의 황폐화를 막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조선왕조가 거의 종말을 고하게 될 무렵인 고종 2년(1865년)에 흥선대원군이 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궁궐의 규모와 면모를 창건 당시 그대로 재현시키는 역사를 강행해 1868년 준공시켰다. 고종2년에 착수한 경복궁 중건은 4년에 걸쳐 계속된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이 고역을 도맡아 진행시켰는데, 국고가 탕진될 만큼 대공사였다. 이를 충당하기 위하여 조정에서는 관료들과 부자들에게서는 물론, 백성들에게서까지 원납전이라는 새로운 화폐를 주조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결과적으로 통화증발을 야기하는 등 경제의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완성시킨 경복궁은 궁성의 길이가 1,762간에 달했으며, 문은 광화문 건춘문, 영추문, 신무문의 사대문이 중건되었다. 궁성 내에 경영한 전각은 합하여 7,225간있고, 궁성 밖에 경영한 후원에는 489간의 전각이 들어섰다. 태조 창건 당시의 경복궁의 규모는 왕궁으로서는 그리 크지 않은 것이었다. <태조실록>에서는 '총 390여 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중건된 경복궁의 규모는 궁성둘레 1,813보, 높이 20 여척, 규모 7,814칸으로 증축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