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불교수용과 전개
- 최초 등록일
- 2012.05.22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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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상사 과목 에이플
목차
머리말
1. 신라의 불교 전래와 공인
1) 불교 수용의 시대적 상황
2) 불교의 전래
3) 불교의 공인 과정
2. 신라 불교의 특징
1) 불국토설
2) 미륵신앙
3. 토착신앙과 불교의 관계
1) 토착신앙과 불교의 갈등
2) 토착신앙과 불교의 융화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이차돈의 순교는 ‘《삼국유사》권3, 흥법3, 원종흥법 염종멸신’ 에도 나타난다. 결국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기 위해 귀족들의 반발을 돌파하고자 이차돈을 희생시키는 극단적인 방법을 썼고, 이로써 법흥왕 15년(528)에 불교가 국가적으로 공인되게 된다.
신라를 마지막으로 하여 시기마다 차이는 있지만 삼국은 결국 국왕 주도로 불교를 공인하였으며, 그 이후 국왕의 권위는 급상승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이차돈 순교 이후 불교를 공인한 신라는 534년 법흥왕이 주도하여 토착 종교에서 천신이 내려와 지신과 결합한 장소로서 신성시하던 천경림(天鏡林)에 신라 최초의 정사인 흥륜사를 세웠다. 절이 완공된 이후 법흥왕은 진흥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스스로 승려가 되었다. 이 외에도 신유림, 문잉림 같은 신성 구역에 절을 짓거나 불상을 조성하는 일이 뒤를 이었고, 이는 불교가 토착 종교를 빠르게 대신해간 과정이며, 아울러 국왕이 다른 귀족들을 압도해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수용, 공인된 초기 불교는 국왕의 초월적 권위를 뒷받침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게 된다.
그러나 신라의 경우는 고대국가 초기 각각의 부가 독자적인 체계를 이룰 만큼 토착세력이 강했다. 또한 그들끼리의 토착신앙이 이미 사상적으로 통일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종교인 불교의 수용은 난항을 겪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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