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묘제-수정
- 최초 등록일
- 2012.05.22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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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백제의 역사는 대개 백제의 수도 천도에 따라 한성 시대와 웅진 시대, 사비 시대의 셋으로 나누어 언급하곤 하는데, 백제의 묘제 역시 이러한 시대의 구분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한다. 그러므로 백제의 묘제는 상기上記한 대로 세 시기로 나누어 언급을 하기로 한다.
백제의 초기(한성 시대)의 묘제는 독무덤·돌덧널무덤·나무널무덤 등 다양한 양식이 있다.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양식으로는 서울 지역의 돌무지무덤(적석총;積石塚)을 꼽을 수 있다. 돌무지무덤이란, 일정한 구역의 지면에 구덩이를 파거나 구덩이 없이 시체를 놓고 그 위에 돌을 쌓아 묘역을 만든 무덤을 이르는 말이다. 돌무지무덤의 기원은 대체로 랴오둥[遼東]반도에 분포하는 고조선시기의 돌무지무덤에서 찾는 견해가 유력하며, 고구려 국가의 성립 이전인 BC 3세기경부터 조성되었다고 여겨진다. BC 3~1 세기에는 무(無)기단식, 그 이후에는 기단식 돌무지무덤이 축조되었다.
백제의 돌무지무덤은 고구려 초기부터 나타난 고구려 계통의 무덤과 유사하기 때문에 백제 건국의 주도 세력이 고구려 계통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근거로 자주 활용된다. 고구려 재래식 무덤형태로 얕은 대지 위에 네모난 돌무지를 층층이 쌓아올리고 가운데 주검을 넣은 형식으로, 제일 아래 단(段)의 네 변에는 돌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돌을 설치하였다. 한강 유역의 돌무지무덤은 모두 기단식인데, 이는 무기단식 축조 이후 기단식을 축조할 시기에 고구려 세력이 이주해 왔기 때문이다.
↑서울 석촌동 고분 2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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