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최고수준의 중국 역사 문화 답사기중
- 최초 등록일
- 2002.11.21
- 최종 저작일
- 2002.11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최고수준의 중국 역사 문화 답사기중 삼국지의 영웅-제갈공명, 그리고 유비 라는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허접할지라도 한게 있어서요^^
목차
없음
본문내용
유비는 어려운 결단 끝에 촉을 점령하고 드디어 자립의 태세를 갖추고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10년동안 그 태세를 굳건히 하기위해 힘썼다. 유비가 촉을 손에 넣은 건안 20년(215)에 손권이 형주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유비가 거절하자 손권은 여몽에게 장사, 영릉, 계양을 되찾도록 지시하였다. 그리하여 익양에서 유비측의 군대와 손권의 군대가 일촉즉발의 대치상태를 이루게 되었다. 이때 조조가 한중의 장노 토벌에 나섰고 장노는 이에 본거지인 양평관을 버리고 일단 남쪽 파서로 달아났으며 조조는 한중전역을 제압하였다. 이에 유비는 손권과 강화를 맺고 강주로 귀환했다. 이때 조조는 촉으로 진격하자는 군사 사마의의 진언을 물리치고 하후연과 장합에게 한중의 수비를 맡기고 낙양으로 철수하였다. 유비가 성도로 돌아온 건안 21년(216)로부터 2년간 내정을 궤도에 올려놓은 유비는 모사로 발탁된 법정의 진언으로 한중탈환을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듬해 건안 23년(218)에 한중을 출병하여 양평군에 포진했으며 이 소식을 들은 조조도 서방 정벌군을 일으켜 진군해 와 두 영웅은 한중을 무대로 마지막 결전을 벌였다. 건안 24년(219)에 유비가 먼저 움직여 첫전투에서 하후연의 목을 베며 승리를 이뤘다. 이후 조조는 험난한 지형을 이용해 수비를 굳혔으며 조조는 후퇴하였다. 그 후 유비는 군신들의 추대를 받아 한중왕에 즉위하고 그 내용을 한의 헌제에게 상주한 뒤 성도로 귀환했다. 건안 24년(219) 7월 유비가 59세가 되던 해의 일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