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항해과정과 아메리카 정복과정
- 최초 등록일
- 2012.05.12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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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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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콜럼버스 대항해의 기원
2. 항해과정
3. 아메리카 정복과정
4. 신대륙 발견의 의의
5. 느낀점
본문내용
◈ 콜럼버스의 항해과정과 아메리카 정복과정 ◈
1. 콜럼버스 대항해의 기원
1451년 8월과 10월 사이탈리아 남서 해안의 항구 도시인 제노바에서 태어난 콜럼버스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당시 제노바는 조선업으로 유명했으며, 콜럼버스는 자연스럽게 바다를 보면서 꿈을 키웠을 것이다. 이곳에서 무역 거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꿈을 꾸게 된다. 1476년 해적의 공격을 받고 피신한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에스파냐어와 항해법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1478년 유력한 집안의 딸 펠리파 페레스트렐로와 결혼한 콜럼버스는 장인이 유품으로 남긴 항해지도와 선장일지, 지도 등을 통해서 `검은 바다`대서양의 바람과 해류에 관한 소중한 정보를 얻게 된다. 당대 유럽인들은 인도와 중국, 일본을 세상에서 가장 먼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비단과 향료, 황금과 보물이 넘쳐나는 곳으로 동경하고 있었다. 콜럼버스 또한 실크로드같이 험한 육로보다는 동양으로 향하는 바닷길을 개척해서 큰 이익을 얻고자 했다. 그는 에스파냐(스페인)와 인도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가깝게 위치해 있다고 믿었으며 1492년 에스파냐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새로운 항로 개척을 위한 항해에 나서게 된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이 아닌 `동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로를 찾기 위해서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
부와 풍요의 땅 아시아로 가는 해로를 찾으려는 노력은 고대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15세기에는 포르투갈이 아프리카를 도는 항로를 열심히 찾았다. 콜럼버스의 탐험은 에스파냐의 지원을 받았지만 1485년까지 그가 산 포르투갈의 환경이 낳은 산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동쪽보다 서쪽 항로를 이용하면 아시아에 더 빠르게 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서쪽으로 아시아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분명히 특이하지만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당시 지식인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원리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았다. 1291년 비발디 형제, 1488년 플랑드르의 페르디난트 반 올멘(콜럼버스를 거절한 포르투갈 왕 주앙 2세가 후원했다)은 실제로 서쪽 항로를 찾아 나섰으나 돌아오지 못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미지의 바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쉽게 항해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문헌을 뒤지고 유럽 각지에서 사람들을 만나 알아본 결과 지구의 크기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20퍼센트쯤 작다고 오판하게 되었다. 그는 독자적으로 세계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아마 여행갈 때 그 지도를 가져갔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