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르보의 버나드의 하나님의 사랑
- 최초 등록일
- 2012.05.09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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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마치 한 여인이나, 한 남정네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렇게 사랑하고 싶어 한다. 양은 냄비처럼 때로는 아주 뜨겁게,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식어지고 만다. 우리의 한계는 거기까지일까?우리가 안고 있는 이 문제의 답을 저자는 적절히 제시한다. 먼저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회복의 메시지였다. 또한 이 회복의 메시지는 단지 멀리서 우리에게 소리치는 고함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한 부분, 한 부분을 만지는 부드러운 가르침이다.저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노력은 경건의 연습이다. 바로 구별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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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하나님의 사랑
클레르보의 버나드(1090-1153)는 지옹지방에서 부르군디 백작의 궁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14세 때 경건한 어머니 아레트가 죽은 후, 신앙적 성숙과 영적생활에 대한 관심보다는 학문을 통해 얻는 영광을 좇으려 했다. 이것은 유혹이었다. 한동안 이런 유혹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어느날 그의 마음을 질책하는 어머니의 환상이 보였다. 그는 이런 체험이 있은 얼마 후 예배당에서 기도하던 중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라”(마6:22)는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을 깊이 묵상했다. 이 말씀 묵상은 버나드와 그의 친구들의 삶을 바꿔놓았으며 후일 수도원 개혁의 불길로 타오르게 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가난하게 되는 것”을 소원하던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우베 강 계곡의 습지에 위치한 시토에 있는 낡은 오두막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기거하며 그의 신앙을 다듬어 갔다. 버나드는 우리에게 알려진 시토 수도원이 낳은 대표적 수도사라고 할 수 있는데 극도의 금욕주의를 앞세운 중세적 신비가로서 인격적 헌신의 모범이 되었다. 이 수도회는 기존 수도사들이 검은색 수도복을 입은 것과 달리 흰색 수도복을 입고 다녔기에 백의 수도사로 불려지기도 했다. 12세기 당시의 논쟁과 격렬한 토론의 분위기에서 침묵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던 이 수도원 운동은 학문 대신 손으로 일하는 것과 단체기도 대신 개인기도를 강조했다. 이 수도회가 목표한 것은 그리스도의 정결한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중세 기사도 정신의 지주가 되었다. 또한 그는 수많은 종교적, 사회적 문제에 개입하여 중재하였으며, 교회개혁의 지도자였다. 또한 제2차 십자군 원정을 가능케한 명설교가였으며 일체의 신학적 변화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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