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에 대하여(답사)
- 최초 등록일
- 2012.04.25
- 최종 저작일
- 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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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창덕궁 답사 후 창덕궁에 대한 레포트. A+
목차
Ⅰ. 창덕궁의 연혁
Ⅱ. 사상적 배경
Ⅲ. 창덕궁의 배치 및 특징
Ⅳ. 내가 둘러 본 창덕궁
ⅰ) 돈화문
ⅱ) 인정전
ⅲ) 선정전
ⅳ) 희정당과 대조전
ⅴ) 낙선재
ⅵ) 부용지, 주합루, 영화당
ⅶ) 불로문과 연경당
ⅷ) 옥류천
Ⅴ. 창덕궁의 역사적 의의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Ⅵ. 창덕궁을 다녀온 후
본문내용
고향이 지방인 나로서는 평소 고궁에 무척 가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 생활 3년째에 접어들면서도 그 흔한 경복궁에도 가보지 못하고 다른 놀거리를 찾기 바빴다. 이번 정원문화론 답사를 통해 창덕궁을 볼 수 있게 되어 좋은 기회가 되었다. 다른 외부인들 없이 우리과 학생들만 볼 수 있어 더욱더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창덕궁의 모습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먼저 창덕궁의 연혁과 그 사상적 배경을 알아보고 내가 직접 본 코스를 순서대로 서술하겠다.
Ⅰ. 창덕궁의 연혁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기로 하고 경복궁을 창건한다. 그러나 2대 정종은 다시 개성으로 환도하였고 3대 태종 때에야 수도를 한양으로 옮길 준비를 하면서 경복궁 동쪽에 별도의 궁궐조성이 있게 된다. 태종 5년에 대대적인 공사가 마무리 되었고 궁의 이름을 창덕궁이라 하였다. 먼저 창건된 경복궁의 동쪽에 조성된 창덕궁은 정궁이 아닌 이궁의 성격으로 건립되며 경복궁에서의 상대적인 위치로 ‘동관대궐’ 또는 ‘동궐’이라 불린다.
창덕궁 조성공사는 태종 4년(1404) 10월에 시작, 다음 해 10월에 일단 끝난 단기간의 공사이므로 태종은 재위 중 계속하여 궁 안의 문이나 누각들을 세웠으니 돈화문이 완성되는 태종 12년에 가서야 거의 궁궐 면모가 갖추어지게 된다.
창건 후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가지 약180여 년간 큰 재난 없이 존속되었다. 연산군 대에 이르러 무리한 공사를 벌였으나 모두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이 왕명에 반대하는 신하는 모두 처형하는 폭정을 하였는데 이 때 많은 전각들이 개조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란이 일어나 한양이 함락될 때 이 궁도 화재를 당했다. 화재 후 15년이 경과하여 선조40년경부터 광해군 원년 사이에 제1차 공사로써 주요 전각을 비롯하여 대개 복구가 되었고 다시 광해군 5년에 제2차 공사로서 완전한 재건 복구가 되었던 것이다. 창건 후 제2의 건설이었다.
참고 자료
창덕궁 http://www.cdg.go.kr/
홍순민 / 우리궁궐이야기 / 청년사 / 1999
신영훈 / 조선의 궁궐 / 조선일보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