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사]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의 결성과 조직상의 특징(特徵)

등록일 2002.11.18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의 개요
2. 조직상의 특징(特徵)과 의의(意義)
1) 1910년대 국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무장 독립운동 단체이다
2) 1910년대 국내 유일의 전국적 조직의 독립군 단체였다.
3) 혁명적 방법으로 독립을 쟁취하려고 국내에 100개 소의 혁명기지를 건설하려고 했다.
4) 공화주의를 표방한 독립혁명 단체였다.
5) 의열투쟁을 단체조직으로 단행한 효시가 되었다.
6) 구성인원을 볼 때, 위에서 지적한 조직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3. 광복회(光復會) 업적에 대한 촌평문제(寸評問題)
4. 광복회(光復會)의 역사적 의의

본문내용

대한광복회는 1913년 경상북도 풍기에서 채기중(蔡基中)을 중심으로 결성한 광복단(光復團)이 주축이 되어 같은 해 대구에서 박상진(朴尙鎭)을 중심으로 결성한 조선국권회복단의 일부 인사가 합류하여 1915년 7월 15일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이다. 구성 인사는 의병 출신자 또는 의병 관계자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중앙에서 박상진을 총사령관으로, 부사령에 이석대(李奭大) 이진룡(李鎭龍))을 선임하였다. 부사령은 만주에서 독립군 양성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진룡이 전사한 뒤에는 1917년부터 김좌진(金佐鎭)이 부사령을 맡았다. 대한광복회는 1916년부터 전국적인 조직으로 발전하여 각도에 지부를 설치하고 있었다. 조직의 규모가 컸던 곳은 발상지인 경상도와, 김좌진·한훈(韓焄)·김한종(金漢鐘) 등이 활동한 충청도와, 이석대(李奭大)·이관구(李觀求) 등의 황해도와, 이병호(李秉昊)를 중심한 전라도의 조직이 규모가 컸고, 또 활동도 활발하였다. 대구의 상덕태상회 (尙德泰商會)를 본부로 하고 영주(榮州)·안동(安東)·영천(永川)·삼척 (三陟)·예산(禮山)·연기(燕岐)·인천(仁川)·광주·용천(평안도)에 곡물상을 설치하고 연락처로 삼았으며, 서울과 황해도 해주와 만주 안동(지금의 단동(丹東))에는 여관을, 그밖에도 만주 장춘(長春)에 이관구가 설치한 삼달양행(三達洋行)과 상원양행(尙元洋行)을 연락처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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