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정권의 강화도 천도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2.04.22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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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인정권의 강화도 천도에 대하여
목차
1. 서론
2. 강화 천도 후 생활과 방비책
3. 무인 정권의 강화도 생활
1) 고려 궁지
2) 선원사지
3) 마니산 참성단
4. 결론
본문내용
강화도 천도 즉 강도는 1232년 (고종19)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서 도읍지를 옮겨졌으며, 이는 다시 개경으로 옮겨질 때까지 38년 동안의 고려의 피난임시수도가 되었습니다.
최우는 천도를 결정한 다음 날 군대를 강화에 보내 궁궐을 짓게 하였으며, 강화천도가 미리 준비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궁궐과 관아 등의 시설은 천도 후 백성들의 고된 공역을 통해 갖추어졌다고 합니다.
‘천도하는 과정에는 모든 기관을 기일 한도로 하여 사람들을 인솔 하여, 제 기일 내에 강화도로 이르지 못하면, 군법으로 다스린다고 하였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강화도는 수도 개경에서 가까운 거리지만,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몽골군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군사.지리적인 이점에다가 바닷길이 개경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어, 개경으로 운반되는 지방의 조세와 공물을 바로 확보할 수 있는 경제적 이점까지 갖추고 있다는 이유로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하게 되었습니다.
강화도 천도의 무인생활을 바라보며, 강화도 자체를 가는 도중 사실 육지와 강화도가 그렇게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있으며, 몽골군이 어느 정도로 공격을 하면 육지에서도 강화도로 공격을 할 수 있는 지형으로 보였습니다.
이는 최우 정권이 자신들의 정권을 정당화하며, 자신의 권력을 내세우기 위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겼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2. 강화 천도 후 생활과 방비책
- 궁궐과 관아: 강화에의 천도는 급속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국도의 경영이라는 사전준비의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없었고, 강화 천도는 선천도하고 후에 설비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 저택과 민가: 이주한 사람들의 가택도 새로 건축하였는데 급작 스러운 천도의 단행으로 한꺼번에 대규모 인구가 이입해 옴으로써 계획성 없이 민가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 방어시설: 육지와 떨어진 강화도는 섬이라는 점에서 몽고군 방어에 지리적으로 크게 작용하여, 고려 주요병력이 집중되어 있으며, 내성,외성, 중성의 3중의 성곽이 장치되어 있어 몽고군 방어를 했다고 합니다.
참고 자료
고려 무인정권기 문사 연구 , 황병성
고려 무인정권과 지방사회 , 신안식
고려무인정권연구 , 홍승기
고려의 무인정권 , 김당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