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의 분열과 쇠퇴

등록일 2002.11.17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 민족개량주의와 실력양성 운동
민족개량주의의 대두
실력양성운동

- 상해임시정부의 성립과 활동
상해임정의 성립
상해임정의 활동

- 만주지역의 항일 독립군
만주지역의 항일독립군
의열단의 활동

본문내용

1920년대에 들어서게 됨에 따라 일제는 기존의 '무단통치'에서 '문화정치'로의 통치방향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일제의 정책변화와 함께 3.1운동의 실패로 인하여 기존까지 가지고 있던 독립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깨지게 되었으며 국내의 우익세력들은 한말의 실력양성 운동을 계승하여 일제와 타협하면서 실력을 양성하자는 부류와 일제에 대한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면서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하자는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다. 주로 재일유학생들을 비롯한 지식인층에서는 급진적이고 적극적인 대일무력투쟁에서 과연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급속도로 전개되었는데 이처럼 경제적으로 실력을 기르고, 사상적으로 민족성을 개조하고 정치적으로는 자치권을 획득하자는 사상을 민족개량주의라고 한다. 1920년대 초 민족개량주의자들은 실력양성운동의 하나로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운동 등을 펼치며 활발히 전개되었으나 곧 이러한 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실제로 민족독립을 포기한 타협노선으로 변질되었다. 현 경방그룹의 모태가 되는 경성방직과 동아일보의 김성수, 이광수, 최남선, 최린 등의 지식인, 종교인들이 민족개량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을 통해서 우리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이 아니라 바로 민족성을 개조하는 일이라고 주장하였으며, 1924년 동아일보 역시 신년 사설에 '민족적 경륜'이라는 글을 실으면서 독립운동을 자치운동으로 전환하고 일본의 주권아래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산업진흥과 교육개발로 민족의 실력을 기르자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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