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한반도의 외국군 주둔사

등록일 2002.11.16 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반도를 침입한 몽고, 임진왜란, 정묘·병자 호란
에 대한 자료입니다.
여러분께 많은 도움이 되었음 합니다.

목차

I. 서론

II. 본론
1.몽고의 침입 (민중의 고통/ 지배층의 사치 향락)
·공녀(貢女)의 징발
·성풍속의 변화
·엄인( 人,고자)의 요구
·몽고식 이름의 유행
·몽고풍의 유행
·만두, 설렁탕, 소주
2.임진왜란
·조선 민초들의 수난과 대응
·귀화인(歸化人)
·전쟁의 상흔(傷痕)
·임진왜란 당시 명군
3.정묘·병자호란
·제야의 수라상에 닭다리 하나
·삼전도비(三田渡碑)의 치욕과 환향녀(還鄕女)의 비극
·조선인들의 송환 문제
·청국장의 유래

III.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2.임진왜란
조선 민초들의 수난과 대응 압도적인 일본군의 직면한 조선인들의 반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전쟁 초기 200여 년간 조선 왕조의 지배층으로 군림해온 관리와 양반 대부분은 일본군의 침입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안전한 지역으로 도망하기에 급급하였고, 잔류된 민초 가운데 일부는 오랜 기간의 봉건적 속박에서 일시적인 해방감을 맛보기도 했다. 이들은 약체화된 지배계급에 대해 공공연히 반항하여 관사와 관창 및 양반집을 습격하고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다. 또 각지의 군영에서는 상관의 명령을 무시한 병사들의 탈주가 속출하였고, 다른 관창을 습격하여 군량과 무기 등을 약탈하며 토적화(土賊化)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지배자라 할 수 일본군에 투항한 자들도 많았다. 그 계층은 농민·상인·노비와 일부 양반관리조차도 포함될 정도로 광범위하였고, 특히 적극적으로 일본군에 협력하여 길 안내를 하는 자, 관청과 관물의 소재를 알려주는 자 등까지 있어 조선 조정에서도 이를 통탄해 할 정도였다. 백성들은 평소 한 해 농사를 공들여 지어도 생계를 꾸려가기가 어려웠는데 전란으로 전라도와 평안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온 나라가 연거푸 2년이나 농사를 짓지 못하였다. 일손이 바쁜 농민들이 전란으로 본업을 팽개치고 관군으로 동원되거나 의병에 참여하여 적과 싸워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적의 칼날을 피해 숨어 다녀야 했다.

참고 자료

『한반도의 외국군 주둔사』 이재범외 (중심, 2001)
『사료로 보는 우리역사』 전국역사교사모임 (도서출판 돌베개, 1992)
『한국민중사I』 한국민중사연구회 (도서출판 풀빛,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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