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지역사 관련조사

등록일 2002.11.14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각 지역마다 그 고장 특색의 유물·유적지를 비롯한 관광명소가 있다. 그러한 곳들은 우리들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 글을 쓰며 나도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가 자기 고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목차

지역사에 관련된 조사
박물관 답사를 다녀와서
경상감영공원을 다녀와서

본문내용

처음 지역사에 관련된 조사란 레포트를 부여받고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를 몰랐다. '답사를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인터넷을 이용한 자료 검색을 해야 할 것인가?'를 몰랐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우선은 대구, 경산 지역이 생겨난 유래부터 살핀 다음 답사를 한 뒤에 레포트를 마무리지어야겠다는 것이다. 그 중 내가 살펴볼 것은 대구에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 등 문화 유적에 대한 것이다. 그 조사에 앞서 지금은 대구에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서 논하여 보겠다. 물론 답사가 이루어진 뒤에도 글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식으로 레포트를 해보긴 처음이다. 하지만 이 레포트가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의 끊임없는 탐구이기에 이런 식으로 레포트를 쓰고 있는 것이다. 서두가 너무 길었던 것 같다.
그러면 대구가 과거엔 어떤 도시였으며 그 명칭 및 유래에 대해 알아보고 그와 관련된 유적지는 탐구활동을 마친 뒤에 첨부하여 서술하겠다.
대구의 명칭의 유래는 이렇다.
'大丘(대구)라는 명칭이 처음 역사에 나타나기는 신라 757年(경덕왕 16年) 주, 군, 현의 명칭을 중국식 이름으로 고친 때부터이다. 그러나 이 개칭은 다음 혜공왕 이후의 기사에 옛 명칭인 달구벌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한 동안 양쪽이 함께 쓰이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達句伐(달구벌)이 大丘(대구)로 바뀐 것은 통일 이후 唐(당)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신라가 모든 제도 문물을 중국식으로 정비해 가는 변화의 한 산물이다. 종래 여러 가지로 불리우던 벼슬 이름이나 지방 이름을 원칙적으로 2자의 한자로 개칭하였다. 개칭의 방법은 음을 딴 것, 뜻을 따르는 것, 아름답게 고치는 것, 글자를 줄이는 것 등이 있는데 달구벌이 대구로 바뀐 것은 음을 딴 경우에 해당한다 하겠다.
『丘』자가 『邱』로 바뀐 것은 조선왕조 英正(영정)시대부터이다. 1750年(英祖 26) 『丘』자를 다른 자로 고치자는 상소가 있었다. 『丘』자가 孔子(공자)의 이름자인 까닭에서였다. 영조는 이것을 신기를 좋아하는 경망한 풍조의 소산이라 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대구 사람들은 점차 達(달)자 대신 脚(각)자를 쓰기 시작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처음으로 大邱로 나오기는 1779年(正祖 3) 5月부터 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丘』와 『邱』가 혼용되다가 哲宗(철종)이후는 1850年(哲宗 원년) 공사간에 모두 大丘를 쓰지 않고 大邱로 쓰게 되었다.'라고 '대구의 향기'라는 문헌에 기술되어 있었다.
이렇듯 대구의 이름은 시대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와중에는 지방민의 상소가 있었으며 그에 따른 영조의 비판도 더불어 있었다. 이는 조선시대의 지방자치제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추후 내가 살펴보게 될 문화유적에 대해 논하여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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