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역사인식] 무과를 통해본 천인의 신분상승

등록일 2002.11.12 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천인무과와 신분변동
2) 광취무과와 신분변동
3) 만과를 통한 신분변동

본문내용

1) 천인무과와 신분변동
조선 전기에는 서얼과 공사천의 무과 응시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다. 조선 전기의 무과는 그 응시절차와 고시과목 등을 고려할 때 소수의 양반신분만 급제할 수 있는 고급 무인관료를 선발하는 국가고시 제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양인의 상층 이상만 급제할 수 있었던 이 같은 무과에 임진왜란 이후 어떤 과정을 통해서 천인들이 대거 급제할 수 있었으며, 그에 따른 신분변동의 실상은 어떠하였을까. 이에 대해서는 먼저 왜란으로 국가적 위기에 처한 정부가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무과의 제반 규정을 완화함과 동시에 선발인원을 대폭 증원하였던 사실에서 찾아진다. 선조와 조정이 7월 초 의주로 피난한 이후 처음 실시한 무과 별시를 볼 때 임진왜란을 계기로 급제기준을 '10시 중 2시' 내지는 '10시중 1시'까지 완화하여 노약자와 신양역천의 관속까지 급제함으로써 무과의 권위가 크게 실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많은 하층민이 무과를 통해서 대량으로 신분상승할 수 있었다. 한편 정부가 임진왜란 이후 공사천을 무과에 급제시켜 국가의 공민으로 편입시키려 한 정책은 선조의 공사천무과 설치계획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선조는 임진왜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사천무과를 삼의사의 잡과와 똑같이 설치하되, 급제자는 종량과 동시에 정군에 편입시킬 것이며, 만약 사천이 군역에 편제되는 대가로 종량하면 그 본주에게는 허통, 면천, 군공보관 등의 방법으로 보상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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