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이승만의 북진통일론
- 최초 등록일
- 2002.11.11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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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전쟁 발발 전 북진통일론
-전쟁중의 북진 통일론
-휴전협정기의 북진통일론
-휴전협정 이후의 북진 통일론
-평화통일론 - 조봉암을 중심으로...
-이승만과 북진통일의 문제점
-결론
본문내용
이승만은 1946년 6월 먼저 남한만으로 정부를 세우고, 세계여론에 호소하여 소련을 철퇴시킴으로써 통일을 이룬다는 '정읍발언'을 통해 자신의 통일 구상을 내비쳤다. 그 후 그는 정부 수립초기까지는 '평화적 통일'에 대한 언급을 계속하였다. 이후 통일 문제에 대해서 일절 언급이 없던 이승만은 1948년 12월 12일 제1회 국회 폐회식에서 "우리는 유엔과 협의해서 이북에 자유선거를 진행해서 100명 내외되는 이북의원들을 선출하여 국회의 비워둔 자리를 보충하도록 할 것'이라는 통일 방안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그 성격 또한 평화적 통일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해방직후 현실 정치를 경험하고 국내 좌익은 물론 세계 공산진영 일반과의 어떠한 형태의 타협도 불가능하며, 불필요하다는 것을 기본 정치 노선으로 세웠다. 해방공간에서 그를 집권으로 인도한 기본 정치구상이라 할 수 있는 단독 정부 수립론도 바로 이점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언급은 자신이 현실적으로 추구했던 정치노선에 비추어 보았을 때, 사실상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 민족적 비난을 무마하는 의미를 넘어 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은 왜 선거이후 그 해 12월까지 통일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까. 이승만은 단독 정부 수립 운동을 했지 통일 운동을 하지 않았고 한국인들이 통일에 관심 갖는 것을 두려워했고 그것을 막고자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