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한국의 신탁통치회담

등록일 2002.11.11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카이로 회담
-테레란 회담
-얄타 회담
-포츠담 선언

본문내용

1945. 2 [얄타회담] - 신탁통치 논의
1944년 후반 이후 독일과 일본의 항복이 확실해짐에 따라 전후처리에 대한 여러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하여 루즈벨트 미국대통령, 처칠 영국수상, 스탈린 소련수상 등 3국 수뇌는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얄타에서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의 주요의제는 전후처리문제와 소련의 대일참전 문제로서 이에 대한 3국간의 의견조정이 필요했다. 당시 스탈린은 소련의 대일참전과 관련하여 중국 및 일본으로부터의 이권회복, 한국의 공산화를 통한 소련의 지배체제 확립 등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탈린은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면 2∼3개월 안에 대일참전을 한다는 입장이었다. 스탈린은 이러한 입장을 1944년 12월 해리만 주소련 미대사에게 전달하였었다. 미 영 소 3국 수뇌는 얄타협정에서 독일의 전후처리문제는 독일을 해체 분할하는 것으로, 그리고 소련의 대일참전 문제에 대해서는 독일이 항복하고 또 유럽전선이 종결된 후 2개월 또는 3개월 이내에 대일전에 참가하기로 합의하였다. 미국이 발표한 얄타회담의 기록이나 그 밖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문제는 회담이 진행중이던 2월 8일 루즈벨트와 스탈린 사이에 토의되었다. 루즈벨트가 한국 신탁통치안을 다시 제기하자 스탈린은 '한국인들이 그 자신의 만족할 만한 정부를 세울 수 있다면 왜 신탁통치가 필요한가'라고 루즈벨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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