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정착과 성장
- 최초 등록일
- 2002.11.08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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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초기 시조와 서정시의 방향
2. 강호로 물러나는 전환기의 작품
3. 영남가단과 강호가도
4. 호남가단과 풍류정신
5. 기녀시조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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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초기 시조와 서정시의 방향
시조는 작자의 감회만 읊는 개인적인 노래이다. 조선왕조창업의 칭송은 악장이나 경기체가에서 발견되지만 고려를 회고하는 시조는 거듭 이루어져 시조가 개인적인 노래임을 확인시켜준다. 원천석(元天錫)과 길재(吉再)가 망한 나라의 도읍을 돌아보고 비탄에 잠기는 시조를 지었고, 개국 공신인 정도전조차도 비슷한 시조를 남겼다.앞의 것은 원천석이, 뒤의 것은 정도전이 지었다고 한다. 두 작품은 '오백년 도업' 또는 '반천년 왕업'이 허망하게 되었다는 비슷한 문구를 보이는데, 다만 젓대소리와 물소리를 들은 차이가 있다. 젓대소리는 쓸쓸한 느낌을 주다가 사라지고 만다면, 물소리는 역사의 흐름을 느끼게 하며 흐를수록 더 커질 수 있다. 그러기에 원천석은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애석하게 여겼고, 정도전은 옛적 나라의 흥망을 새삼 물어 무엇하겠냐며 과거와 현재를 구별했다. 이런 작품에서 시조는 서정시로서의 깊이를 재확인했다. 세계를 자아화시키면서 사실을 확인하는 시조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대신에 맹사성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가 안정기의 정서를 표현하는 길을 열었으며 황희(黃喜)의 작품이 거기 호응했다. 이 두 사람은 조선왕조가 기반을 다지는 데 큰 구실을 한 재상이었고, 시조에서 태평성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