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몽고항쟁

등록일 2002.11.07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몽고(蒙古)의 고려침입
- 1차침입
- 2차침입
- 3차침입
- 4,5차침입
- 6차침입
- 7차침입

2.몽고침입의 영향

3.고려인의 대몽항쟁

본문내용

몽고족은 여로 부족으로 나뉘어 요(遼), 금(金)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테무진(鐵木眞)이 몽고지역 전체를 통합하고 대몽고국을 세웠다. 그리고 다음해부터 정복전쟁을 추진하여 주위의 서하국(西夏國), 금, 서요국(西遼國) 등을 정복하고, 서쪽으로 진출하여 서아시아, 남러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 영토는 징기스칸의 여러 아들 및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중국지역을 정복한 뒤 1271년에 국호를 원(元)으로 바꾸었다.
고려와 몽고의 관계는 1218년(고종 5)에 몽고군이 거란의 유민(遺民)들을 추격하여 고려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보다 앞서 요나라가 멸망한 뒤 금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던 거란족이 1211년경부터 몽고의 도움을 받아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지배층의 내분으로 야율유가(耶律留哥)가 몽고에 투항하였고, 이를 계기로 몽고가 거란을 공격하자 이에 쫓긴 거란의 유민들이 1216년(고종 3)에 고려를 침범하였다. 당시 고려는 이들에 의하여 북계(北界)지방을 침탈당하고 개경마저 위협을 받았으나, 곧 반격을 가하여 이들을 서경(西京: 平壤) 동쪽의 강동성(江東城)에 몰아넣는 데 성공하였다. 이 사이에 몽고는 포선만노(浦鮮萬奴)의 동진국과 연합하여 거란 유민을 뒤쫓아 고려에 들어왔고, 추위에 군량 부족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자 고려에 군량과 원병을 요구하였다. 고려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서북면원수 조충과 병마사 김취려(金就礪)가 군사를 이끌고 몽고군과 합세하여 강동성의 거란족을 섬멸하였다. 그 직후에 몽고의 요구에 따라 두 나라 사이에 형제맹약이 맺어짐으로써 고려는 몽고와 외교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몽고는 고려에 대하여 공납(貢納)을 강요해왔고, 고려측에서는 몽고의 과중한 요구와 몽고 사신들의 고압적인 자세에 반발하여 두 나라 사이에 긴장감이 일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마침 공납을 독촉하기 위하여 고려에 파견된 몽고 사신 제구유(著古與)가 돌아가는 길에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침공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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