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광해군 정치세력의 변동과 계축옥사

등록일 2002.11.07 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Ⅰ. 머리말

Ⅱ. 광해군의 즉위와 연정(聯政)체제의 성립
1)광해군의 즉위
2)연정체제의 성립
3)북인과 서·남인세력의 대립

Ⅲ. 연정체제의 변화
1)회퇴변척
2)김직재(金直哉) 옥사(獄事)

Ⅳ. 연정체제의 붕괴
1)계축옥사
2)대북세력의 독주와 토역론(討逆論)

본문내용

광해군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왕세자가 되고 국왕으로 즉위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광해군은 정비(正妃) 소생의 적자(嫡子)가 아니었고 동모형(同母兄)인 임해군(臨海君)이 생존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진왜란(壬辰倭亂)의 발발로 인하여 그는 전격적으로 왕세자로 결정되어졌다.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이 분조(分朝)를 이끌면서 벌였던 활약은 성공적이었다. 또한 그의 전란중의 활동으로 인하여 그는 다음 왕위 계승자로서 능력과 자질을 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선조말(宣祖末)에 이르러 새로 맞아들인 선조의 계비김씨(繼妃金氏)에게서 적자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이 출생하여 세자로서의 입지가 흔들리게 되었다. 게다가 광해군은 명나라 왕실내부의 문제로 인해 차자(次子)라는 이유로 세자로의 공인(公認)을 명정부로부터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조가 위독해지게 되었고, 당시 영의정으로 있던 유영경(柳永慶)은 영창대군을 지지하여 선조가 광해군에게 내린 전위 또는 섭정(攝政)의 내용을 비밀로 하고, 이의 철회를 요청하는 상소를 선조에게 올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유영경의 행위에 북인의 정인홍(鄭仁弘)은 광해군을 지지하고 유영경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도리어 선조의 분노를 사게 되고 유배에 처해지게 되었다.

참고 자료

한명기, 2000, 『광해군-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역사비평사

한명기, 1998, 「폭군인가, 현군인가 광해군 다시 읽기」『역사비평』44, 역사비평사

어혜순, 1999, 「광해군과 대북세력의 정치운영 연구」, 연세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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