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지리] 조선왕조-경복궁

등록일 2002.11.07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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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경복궁은 태조 4년에 창건된 조선의 정궁이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건국한 다음 천도할 것을 결심하고, 즉위 3년에 한양을 도읍으로 결정하여, 10월에 천도하고 이듬해에 경복궁을 이룩했다. 이 궁은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으로 전소(全燒)되었으며, 그 후 왕궁으로서 불길하다는 이유로 273년 간이나 중건되지 못하였다가 고종 때 중건되었다. 고종2년에 착수한 경복궁 중건은 4년에 걸쳐 계속된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이 고역을 도맡아 진행시켰는데, 국고가 탕진될 만큼 대공사였다. 이를 충당하기 위하여 조정에서는 관료들과 부자들에게서는 물론, 백성들에게서까지 원납전이라는 새로운 화폐를 주조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결과적으로 통화증발을 야기하는 등 경제의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완성시킨 경복궁은 궁성의 길이가 1,762간에 달했으며, 문은 광화문 건춘문, 영추문, 신무문의 사대문이 중건되었다. 궁성 내에 경영한 전각은 합하여 7,225간이 있고, 궁성 밖에 경영한 후원에는 489간의 전각이 들어섰다.
태조 창건 당시의 경복궁의 규모는 왕궁으로서는 그리 크지 않은 것이었다. <태조실록>에서는 '총 390여 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중건된 경복궁의 규모는 궁성둘레 1,813보, 높이 20여 척, 규모 7,814칸으로 증축되었다. 달라진 점은 왕의 침저인 강녕전 좌우에 연길당, 응지당이 추가되어 5星을 이루고 광화문에서 홍례문까지의 좌우의 장랑이 담으로 바뀌었다. 또한 동궁에 계조당과 자선당 이외에 시강원과 익위사가 신설되고 청연각 자리에 자경전이 건립되면서 청연각은 부속 누각을 처리되었다. 궁성 동북부와 서북부가 크게 확장되었고 궐내 각사의 배치가 조선 후기의 병화된 관직을 반영하였으며 교태전 뒤에 아미산을 후원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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