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 정한론쟁의 배경과 경위

등록일 2002.11.05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600원

소개글

정한론에 대해서 발표한것을 레포트형식으로 바꾼것인데요.
아주 자세하게 국제배경까지 써있습니다.
용어설명도 따로 되있습니다. 메이지유신과 결부시켜 설명해놓았습니다.

목차

2.1 화이 질서와 만국공법
2.2 폐번치현 전후의 한일 관계
2.3 정한론쟁과 한·일 관계

본문내용

(전략)
2.2 폐번치현 전후의 한일 관계
메이지 유신이란, 막부가 무너지고 번제도를 폐지하여 중앙통일 권력을 수립한 변혁을 말합니다. 메이지 유신 직후 다시 성립한 천황정권의 역사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근거로서, 정부측은 ‘왕정복고’ 사관을 주창하였습니다. 이 사관은 유신이란 한때 무가에 옮겨가 있던 정권을 천황에게 되돌림으로써 국가의 참된 모습을 회복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대조선 정책 3개조
이리하여 메이지 정부는 왕정복고를 알리는 서계(書契)를 조선에 보내고. 쓰시마 즉 대마도 번주 소 요시아키는 새 정부의 구미에 맞게 외교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이 외교개혁은 전통적인 교린관계를 전면부정하는 것으로서 조선이 준 도서를 폐지하고 일본도장을 사용하며 대마도주가 조선 예조참판과 동등한 입장에 서고, 왜관 관수가 역관을 통하지 않고 동래부와 직접 교섭한다는 내용등이 골자입니다. 쓰시마번주가 이 서계를 보낸 이유는 조슈파와의 합의를 통해 조선의 거절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조슈파는 조선의 거절을 이끌어내어 전쟁 위기를 만들고, 이를 이용하여 정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1869년 1월 왜관에서 교섭에 들어간 일본은 조선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자 1년여를 서계 수리문제에 대해 옥신각신하였습니다. 서계의 수리 문제를 두고 조․일 간의 교섭이 교착 상태에 빠진 사이 메이지 정부는 1869년 11월 쓰시마 번주의 대조선 외교를 정지시키기로 결정, 이는 조선에 대한 외교의 주도권이 일본정부의 손에 넘어갔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1870년 3월 조선의 훈도(訓導) 안동준(安東晙)은 대등 관계에 있는 일본이 황제 황이나 칙 같은 종주국 청만이 쓸 수 있는 글자를 쓰는 등 서계가 관례를 벗어난 것이라 하여 수정을 요구, 동래부사와 협의하여 옛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계를 고쳐야한다는 뜻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일본은 이 서한을 왕정복고 통지를 거부한다는 공식서한으로 받아들였고, 일본 내에서는 정한론의 분위기가 조성되어졌습니다. 그리하여 1870년 5월 외무성은 조․일 교섭 문제를 타결짓기 위한 방침을 정부에 제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대조선 정책 3개조’입니다.
대조선 정책 3개조 내용

참고 자료

http://www.empas.com/ 엠파스 백과사전
일본학총서1 日本史槪說 金鉉球․李彦叔 譯 知永社
근현대 한일관계와 국제 사회 방송통신대학
http://unsuk.kyunghee.ac.kr/history/04-3.htm 자료사진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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