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시대 남북관계 -7.4남북공동성명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2.03.06
- 최종 저작일
- 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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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7.4 남북공동성명을 중심으로 박정희시대 남북관계에 대해 쓴 글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7.4 남북공동성명이전의 남북관계
3) 7.4 남북공동성명 시행의 배경
4) 7.4 남북공동성명 시행까지의 과정
5) 7.4 남북공동성명의 내용
6) 결과
7) 나오는 말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한반도는 해방이후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차이로 인해 분단이 되었으며, 1970년대 초 화해의 무드가 마련되기 전까지 주변국의 이해관계와 남북의 체제유지를 위해 서로 적대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는 남북적십자회담과 더불어 비밀접촉을 동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7.4 남북공동성명’을 1972년에 발표하게 됨에 따라 제한적인 관계개선이 이루어졌다. 남북 최초의 대화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는데 이러한 ‘7.4 남북공동성명’이 남북관계에 미친 영향과 한계점을 살펴봄으로 차후 남북관계의 방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2) 7.4 남북공동성명이전의 남북관계
박정희 정권의 대북정책은 혁명공약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즉,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는 것과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는 것은 철저한 반공정책에 더하여 비타협적 노선을 표방한 것이라고 하겠다.1)
따라서 61년 7월 4일 반공법이 공포됨으로써 정부와 의견을 달리하는 통일논의는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 용공으로까지 매도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장면 정권시기 분출되었던 정치 · 경제 · 사회적 불안감과 급진적이고 감상적인 통일논의로 국론이 분열되는 부작용이 반공태세 강화와 안보의식 확립의 명분을 제공하게 되었다.
당시 국방력은 물론이고 경제력까지 북한보다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력배양 우선론이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했다는 정통성의 취약점을 만회하기 위하여 대북정책의 정부독점과 안보논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도 없지 않았다.
참고 자료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사
박세길,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돌베개
정해구, 「남북대화의 가능조건과 제약조건 분석 : 7.4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사례를 중심으로」, 통일문제연구 제 10권 제 2호, 1998
김권희 「대북포용정책과 남북한관계의 변화에 관한 연구」, 단국대 행정법무대학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