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과 왕의 탈신성화
- 최초 등록일
- 2012.02.29
- 최종 저작일
-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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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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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1. 군주정의 탈신성화
1) 악담
2) 포스터
2. 왕과 민중의 단절
1) 궁정의식의 변화
2) 표상의 변화
맺음말
본문내용
머리말
프랑스 혁명은 비단 정치적인 원인 뿐 만 아니라 사상을 포함한 문화적 영향이 큰 역할을 행사 했다. 그 중에서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을 통해서도 잠시 봤던 왕의 탈신성성에 관한 문제를 본고에서 다루려고 한다. 왕권의 신성성에 대해 당시 프랑스 인들은 어떻게 생각했으며, 이것이 앙시앵 레짐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자.
1. 군주정의 탈신성화
1789년에도 여전히 프랑스인들의 국왕에 대한 사랑은 손상되지 않았다. 삼부회로 보내는 진정서의 나타난 왕의 모습은 나약한 아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매력적인 아버지였다. 전통적으로 왕의 모습과 연결된 이미지(아버지, 재판관, 정의의 수호자)는 이렇게 프랑스혁명 전야에도 손상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영주의 착취와 왕의 자비로움을 비교함으로써 더욱 강조되었다. 즉, 지방의 시민들은, 귀족들의 착취에 대해 왕에게 호소하였고, 봉건적 잔재를 없애달라고 호소하였다. 1789년 봄, 프랑스 왕국을 감싸고 있었던 부흥의 열정은 군주제의 신비스러운 측면을 감소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군주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정서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군주정과 사회의 모든 신분들을 결합시키기 위한 사랑과 충성의 신조를 열렬히 제창하였지만, 진정서에 드러나는 왕의 모습은 더 이상 옛날과 같지 않았다.
참고 자료
로제 샤르띠에 지음, 백인호 옮김, <<프랑스혁명의 문화적 기원>>, 1998, 일월서각.
김민재 지음, <<프랑스 혁명의 이상과 현실>>, 1998, 역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