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중대의 전제정권의 성립과 한계
- 최초 등록일
- 2012.02.28
- 최종 저작일
- 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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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專制政權의 성립
1. 武烈王과 貴族과의 갈등
(1) 金春秋의 등장
(2) 貴族과의 갈등
(3) 專制政權의 성립
2. 文武王의 貴族 억압
3. 神文王의 貴族 견제
Ⅲ. 新羅中代 專制政權의 붕괴
1. 官僚制의 특징
2. 官僚制의 한계
(1) 6頭品의 좌절
(2) 執事部 侍中의 변질
17 Ⅳ. 맺음말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新羅에 의한 三國統一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신라사 뿐만 아니라 한국사 전체에 있어서도 커다란 획을 그은 시기로 인식될 수 있다.1) 이같은 점을 반증이라도 하듯이 『三國史記』,『三國遺事』두 史書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신라를 3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우선 『삼국사기』는 통일전쟁의 주동세력으로 인식되는 최초의 眞骨系王 金春秋(武烈王)의 출현을 기점으로 上代(BC57~653年)와 中代(654~779)를 구분짓고 있으며, 『삼국유사』는 武烈王의 즉위를 기점으로 中古(514~653)와 下古(654~935)를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두 사서의 시기구분 기준이 다소 相異하다 하더라도 통일전쟁기가 상당한 변동기로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本稿는 신라의 시기구분을 『삼국사기』의 시기구분에 따라 서술함을 미리 밝혀둔다.)
이처럼 統一期를 큰 변동의 시기로 인식할 수 있는 바, 이후 신라의 정치와 사회에 커다란 변화가 있음이 예상된다. 통일된 국가로서 신라는 더 넓어진 영역의 통치와 더 늘어난 자국민에 대한 통제를 위해 정치적 변혁이 필요했을 것이다. 게다가 처음으로 진골출신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심각한 갈등과 모순들이 존재했을 것이고, 이에 대한 왕권의 강화와 기성세력에 대한 견제가 발생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통일전쟁기, 즉 신라中代 초반기의 변화되는 정치적 환경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흔히 新羅中代를 전제정권의 시대로 지칭한다.2) 王權과 臣權의 세력균형속에서 유지된 신라上代의 통치조직은 통일전쟁기 前後에 진행된 왕권과 신권의 대립과정에서 왕권측으로 그 힘이 기울어지면서 전제정권이 확립되어간다. 武烈王에서부터 이어진 專制王權化 작업은 神文王대로 들어서면서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룩한 전제정권은 신라下代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왕권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화되는 왕위쟁탈전으로 인해 무너져 버린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