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교사] 조선과 서양의 만남
- 최초 등록일
- 2002.11.03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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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가 외국에 개항하게된 역사적 배경과 의미 재해석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조선에 대한 서양인의 인식
1)조선과 서세동점
2)조선 선교의 시도
3)서양인과의 접촉
2.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1)병인양요
(1)배경
(2)진행·경과
(3)프랑스 원정 실패
2)신미양요
(1)배경
(2)진행
(3)경과
(4)미국이 실패한 요인
(5)결과
3. 병인·신미양요 재조명
1)병인박해 원인
2)러시아와의 관계
3)조선의 마지막 조약국 프랑스
4)프랑스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미국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구한말(조선)부터 일제식민통치(을사보호조약, 1905)에 이르는 시기까지 우리(조선)의 외교사(또는 대외관계사)는 주로 개국(개항)을 중심으로 한 兩國 교섭사 차원에서 다뤄져 왔다. 예를 들면, 조선의 개국은 단순히 韓·日, 韓·美, 韓·中 간의 문제로만 취급되었다. 특히, 1876년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조약)를 조선 '근대화'의 시점으로 규정하고 이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조선의 외교사는 韓·日 관계 중심의 '개국·쇄국'이란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서양(유럽)은 '지리상의 발견'을 통해 그들의 시야를 전 세계로 확대시켜 나갔다. 15∼16세기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동아시아에 진출했고, 17세기부터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러시아, 미국 등이 동아시아의 패권(覇權)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중국(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은 서양 제국주의(帝國主義) 열강들의 세력다툼의 한 장(場)의 역할을 하게 된다. 비록 중국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한반도) 역시 지정학적·전략적 측면에서 이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