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간호학(의정부)3500
- 최초 등록일
- 2012.02.17
- 최종 저작일
-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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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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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사정
Ⅰ. 지역의 특성
Ⅱ. 대상인구의 건강상태
Ⅲ. 환경상태와 각종 자원
Ⅳ. 자원이용(보건사업 현황)
Ⅴ. 기능 및 과정
본문내용
8) 의정부시 유래
1400년 방원이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입하고 왕위에 오르자 태조 이성계는 태사왕이 되었다. 태조는 두 차례의 골육상쟁 때문에 심경이 매우 불편해있었다.
그는 방원에게 옥새를 남겨주지 않은 채 소요산으로 떠났다가 다시 함흥에 머물렀다. 이때 태종은 함흥에 계신 부왕을 모시기 위해 여러 명의 차사를 차례로 보냈으나, 부왕은 물론 차사마저도 돌아오질 않았다. 이때 심부름 가서 돌아오지 않거나 아무 소식이 없음을 비유해서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태조는 태종이 보낸 무학대사의 간청으로 환궁을 하게 되고 태종이 지금 호원동전좌 입구까지 나와 부왕 태조의 환영준비를 하게 된다.
환영식장은 임시로 노천에 큰 천막을 설치키로 했는데 이때 신하 하륜이 아름드리 고무로 고주기둥을 세워야한다고 건의한다. 때마침 도착한 부왕태조는 태종에 대한 노기가 충천해 활에 철전을 매어 잡아 당겼으나 살은 천막 기둥 연대에 꽂히고 태종은 목숨을 건지게 된다. 태조는 백발백중의 명사수였으나 한 신하의 지략으로 태종은 무사했다. 또한 두 임금이 잔치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앉은 다음, 부왕에 올리는 헌주는 반드시 아들 태종이 바쳐야 마땅하나 신하 하륜이 신관을 시켜 술잔을 올리도록 귀뜸했다.
그러자 태조는 옷소매에서 철퇴를 꺼내 던지며 웃고 말았다. 태조가 가까이 오면 철퇴로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륜의 뛰어난 지략으로 태종이 두 번의 위기를 모면하였고 태조도 ‘이것이 모두 천운이로구나’라며 태종을 인정하게 된다. 이때 두왕이 서로 대좌하였던 곳이 지금의 호원동 전좌마을이 되었다.
그 후 태조는 끝내 환궁치 아니하고 이곳 의정부에서 잠시 머물러 있다가 남양주시 진접면 내각리 풍양궁에서 지냈다고 전한다. 태조가 의정부 지역에 머물러있는 동안 조정대신들이 여기까지 와서 태조와 함께 정사를 논의 결정하는 한편, 태상왕의 윤허를 받았다고 하여 조선시대 최고 관청의 명을 따서 ‘의정부’라 했다.
(※ 의정부는 원래 조선시대 행정부의 최고 기관으로 임금을 보좌하며,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논의 결정하던 기관이었다.)
참고 자료
제목 : 지역사회간호학
발행 : 2008년 3월 7일
저자 : 김화중 외 13명
발행처 : 수문사
제목 : 지역사회간호학
발행 : 1997년 1월 10일
저자 : 김모임 외
발행처 : 현문사
기타 : 보건소 민원인 차트자료
지역사회간호학, 현문사, 1997. 1. 10. 김모임외
의정부시 보건소내 자료
통계청 http://www.nso.go.kr/
의정부시 통계연보
의정부시 건강 영향 평가조사(2004)
의정부시민의 보건으료 의식 및 상태조사(내부자료) 2007.12.17
경기도 제 2청사 http://north.gg.go.kr
경기도청 http://www.gg.go.kr
의정부 시청 http://www.ui4u.net/
의사모사이트 http://uisamo.net/
한국청소년 쉼터 협의회 http://jikim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