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를 중심으로 바라본 삼국통일
- 최초 등록일
- 2012.02.16
- 최종 저작일
- 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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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 사기 내용을 중심으로 바라본 삼국통일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1.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여)왕 편」을 근거로 한 신라 사대성에 관한 q론.
2.「삼국사기-신라본기 태종무열왕 편」신라의 사대성에 관한 변론.
3.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편」을 근거로 한 신라 사대성에 대한 변론
3. 나가며.
본문내용
1.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여)왕 편」을 근거로 한 신라 사대성에 관한 q론.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 당의 삼국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료는 「삼국사기-신라본기 선덕(여)왕편」이다. 이 시기가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이 통일전쟁을 시작하는 시점보다 많이 떨어져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후 각 국가 간의 관계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중심으로 분석해보겠다.
선덕(여)왕 11년.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나라 서쪽의 40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모의해 당항성을 빼앗아 당으로 가는 길을 빼앗으려 하니, 왕이 당 태종에게 사신을 보내 위급한 사정을 알렸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이 군사를 거느리고 대야성을 쳐서 함락시켰는데, 도독 이찬 품석과 사지 죽죽 용석 등이 이 싸움에서 죽었다........고구려 왕 고장은 평소에 춘추의 이름을 들었던지라. 군사의 호위를 엄히한 다음 그를 만났다. 춘추가 의견을 아뢰기를......“백제가 무도하여 긴 뱀과 큰 돼지처럼 잔인하고 탐욕스럽게 우리 영토를 침범하므로, 우리 임금께서 귀국의 군사를 얻어 그 치욕을 씻고자 하여 이렇게 저를 보내 대왕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고장은 그의 말이 불손한 데 노하여 그를 가두었다.......고구려 왕이 그 소식을 듣고 춘추를 풀어 돌려보냈다.
이 선덕(여)왕 11년의 기록에서 이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의 모든 정황들이 추론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