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의 성립과 통치제도
- 최초 등록일
- 2012.02.12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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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정성껏 작성하였습니다^^ 레포트 쓰시는데 잘 활용하시고 A+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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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Ⅰ. 북위의 성립과 통치제도
선비의 한 갈래인 선비계 탁발부는 2세기 후반경에 흥안령 동북부 울선동과 훌룬호수에서 음산산맥 부근으로 남천하였다. 탁발부는 이동목축생활을 영위하던 부족들의 연맹체였는데, 중국과도 비교적 근접하고 농경도 부분적으로 가능했던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그들의 경제생활에도 변화가 생겨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후한대에 남하하여 옛 흉노가 살던 곳으로 들어와 유목생활을 하였다. 3세기 전반 역미1)때부터는 약탈을 통해 가축과 인민을 빼앗아 오는 한편, 성을 쌓아 정착하여 살기도 하고 농경도 실시하였다. 탁발부는 역미에서 십익건(什翼?)에 이르는 150년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된 이러한 변화로 말미암아 부족 지배층내의 권력구조에 차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3세기 중엽 탁발부는 나중에 세습화된 대인(代人)이라고 하는 맹주를 중심으로 결속을 굳혀 성락에 도읍을 구출할 정도의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서진은 이 새로운 세력을 회유하고 이용하고자 대인(代人)인 탁발부 노를 대왕에 임명함으로써 산서성 북부부근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동진의 시대가 되자 탁발부는 자동적으로 진과의 신하로 다르던 관계에서 이탈하여 대왕(代王) 십익건은 선비의 다른 부족, 흉노의 여러 부족, 또 남아 있던 한족을 모아 자립을 꾀해 338년에 진을 모방하여 백관을 정비하여 대국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대는 십익건 사후 전진(前秦)의 부견에 의해 멸망하였다. 그 후 전진이 붕괴되자 386년에 탁발규는 대를 부흥하여 대왕이라 칭하다가 다시 398년에 국호를 위로 바꾸고 평성에 도읍하여 도무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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