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唐代) 유학의 부흥과 도교, 불교와의 관계
- 최초 등록일
- 2012.02.12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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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당대(唐代) 유학의 부흥과 도교, 불교와의 관계
- 삼교 일치 사상을 중심으로
1. 당대(唐代) 불교(佛敎)의 흐름
당(唐)의 통치자들은 백성들의 사상을 강력하게 통제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불교를 제창하였다. 이에 따라 불교의 전성기이며 불교가 중국화된 시기가 된다.
불교신앙이나 문화는 서민층에 깊이 침투하였는데, 사원들은 은신처로 제공되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숙박시설로 제공되기도 하였으며 학문과 문화를 전달하는 학교의 구실도 하는 등 많은 사회적 역할을 했다.
경제면에서 사원은 실로 엄청난 규모였다. 불교승려에게는 면세 특권과 병역 및 부역의 면제 혜택이 주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사원경제는 하나의 기업수준이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사원에는 승려 이외에 동자(童子), 사미(沙彌), 노비 등이 거주하며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는데, 승려의 숫자만도 적게는 2~3명에서 많게는 300명에 이르렀다. 사원에서 생활하는 승려 한 사람이 일년에 쓰는 비용은 대개 쌀 여섯 섬이었으며, 의복비만도 4,000문(文)이었다고 한다. 또한 가람의 수리에도 많은 비용이 들었으며, 특히 하나의 사찰을 세울 경우에는 거액의 비용이 소요되었다. 사찰의 행사나 법회에도 많은 경비가 들었다. 때문에 직접 방앗간을 경영하는 것은 물론, 사원 자체의 수익사업도 크게 성행했다. 사원이 소유하는 영지(領地)는 원칙적으로 보시로 마련되었으나, 교단이 확장되고 사원이 융성해짐에 따라 승려들이 직접 사원의 영지를 확장하는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원래 복전(福田)사상에 토대를 둔 금융사업까지도 나중에는 축재(蓄財)와 영리를 추구하는 고리대금업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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