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한국 극장의 역사
등록일 200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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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들에게 ‘시설물’로서의 극장이 선보인 것은 1900년대 초에 들어서부터이다. 그 이전까지 서민들에게 전통적 연극형식의 ‘탈춤’ ‘꼭두각시놀음’ 등을 보여주던 남사당패(男寺黨牌)가 있었으나 뿌리 없는 유랑민이었기 때문에, 한 곳에 포장(布帳)을 쳤다가 떠날 때 거두어 가는 그들의 극장은 무형극장일 수밖에 없었다. ‘꼭두각시놀음’의 경우 포장이라 하던 놀이판[舞臺]은 3 m2 안팎에 네 기둥을 세우고 1.2 m 정도의 높이에 설치한 ‘공중무대’로, 이 공중무대는 무대면을 바라보는 한쪽만 가로 2.5 m, 세로 70 cm 정도 되게 개방해 놓고 나머지 3면은 포장으로 둘러쳤다. 이 무대에 인형이 나와서 연희하였는데, 이처럼 남사당패의 놀이판은 그 ‘포장’이 극장이고, 그 객석이 극장이었다. 그래서 최남선(崔南善)도 이러한 연유로 해서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특정한 극장시설이 없었음을 지적하였다.한국 최초의 실내 상설극장이며, 황실극장격인 협률사(協律社)가 개설된 것은 1902년(광무 6)이었다. 이 해 12월 고종 황제의 등극 40년을 맞아 정부에서는 ‘어극 40년(御極四十年)’의 칭경예식(稱慶禮式)을 거행하기 위한 준비의 하나로 서울 서대문구 신문로 새문안교회 자리에 극장시설을 마련하여 기생 ·재인(才人) 등을 연습시킨 후, 수교국가(修交國家)의 원수(元首)들을 초청하였다.판매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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