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지
- 최초 등록일
- 2012.01.28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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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선지의 업적을 시간순으로 살피고 평가를 덧붙였습니다.
과제점수 만점을 획득했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출생과 성장
Ⅲ. 토번 정벌
Ⅳ. 석국 정벌
Ⅴ. 탈라스 전투
Ⅵ. 최후
Ⅶ. 결론(평가)
본문내용
중국사 속의 한국인 - 고선지
Ⅰ. 서론
서기 668년, 고구려가 멸망했다. 동아시아 최고의 군사 대국이었던 고구려였기에, 그 유민들 중에는 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무명을 떨치며 활약한 자들이 많았다. 대조영은 옛 고구려 땅에 새로운 나라 발해를 세웠고, 이정기1)의 군세는 당의 수도인 장안마저 도모할 정도였다. 노비로 중원에 끌려왔다가 당 현종의 책사가 되어 삼공의 벼슬까지 지내며 개원지치의 기반을 다지고, 마지막에는 당 황실의 전복을 꾀하다가 실패한 왕모중2), 당의 병부상서와 절도사, 사공을 역임했던 무장 왕사례3)도 있다. 그리고 중국사 내에서는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인물로, 이슬람인들이 `중국 산맥의 제왕`으로 기억하는 당대 최고의 장수, 고선지가 있다.
Ⅱ. 출생과 성장
고선지의 출생년도와 출생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구당서`의 `고선지는 원래 고구려 사람이다`라는 구절을 통해 그가 고구려계임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구당서`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고사계라는 사람으로, 당의 무장으로서 안서도호부에 종군하였다. 원칙적으로 노예 신분인 패망한 국가의 유민들이 신분 상승을 이루는 유일한 길은 무인이 되는 것이었다. 고선지는 안서도호부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무예를 갈고 닦았고, 20세의 나이에 유격장군이 되어 전장에서 활약한다. 747년에는 천산산맥 서쪽의 달해부를 정벌한 공으로 벼슬이 안서 부도호, 사진도지병마사에 이른다. 안서도호부의 2인자가 된 것이다.
Ⅲ. 토번 정벌
토번은 730년에 맺은 당과의 평화 조약을 파기하고 서역 소국들의 정벌을 감행한다. 747년, 토번은 사라센 제국과 동맹을 맺고 더욱 당을 위협했다. 서역 경영을 주도하고자 했던 당으로서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다. 현종은 고선지에게 군사 1만 명을 주고 토번 연운보를 함락하라는 명을 내린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