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친일파의 행적들

등록일 2002.10.30 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서론

Ⅱ. 친일파 개인·단체
<1> 우월 김활란의 묻어둘 수 없는 친일 행적
교육·기독교계 여성지도자의 대명사 김활란
민족주의자 김활란
반민족행위의 시점
아마키 카츠란이 되어 학병·징병을 권유
반공전선에 서서 활동을 계속

<2> 친일관련단체
임전대책협의회(임전대책협력회)
조선임전보국단 (임보단,보국단)
조선부인문제연구회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정동연맹)
경성기독교연합회 (경선기련)
방송선전협의회
애국금차회(愛國金釵會)
국민총력조선연맹
매일신보(每日新報)

Ⅲ. 결 론

본문내용

■ 교육·기독교계 여성지도자의 대명사 김활란

김활란은 일제하에서는 '여성박사 1호, 전문학교의 유일한 여성교장, YWCA 창립자' 등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교육·기독교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혀왔다. 그리고 8·15 이후에는 이화여대 총장직과 배화학원, 국제대학, 동구학원, 금란여중고, 영란여중고 등 여러 학교의 이사장직을 맡았으며, 사회단체로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여학사협회, 대한부인회, 주부클럽연합회, YWCA등 여성단체를 설립하고 회장 등의 임원직을 역임하였다. 또한 정부수립 직후에는 유엔총회 때 한국대표로 참석하였고, 6·25 때는 공보처장, 1965∼70년에는 대한민국 순회대사, 한국아시아반공연맹 이사 등 정치·외교활동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결과 정부로부터 1963년에는 대한민국장 포상을 받았고, 1970년 사망한 이후에는 대한민국 일등수교훈장을 받았다. 이렇듯 여성명사의 대열에서 김활란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교육·여성계에서 그가 누렸던 명성과 지위만큼이나 일제 말기에는 교육·종교계 인물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의 친일 행각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물론 일제하에서 그가 범한 반민족 행위 때문에 그의 공헌, 그에 대한 찬사가 모두 거짓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참고 자료

한국현대사, 강만길(1993), 창작과 비평사
친일파 죄상기, 김학민.정운현(1993), 학민사
친일파 99인 , 반민족문제연구소(1993), 돌배개
실록 친일파, 임종국(1991), 돌베개
일제침략과 친일파, 임종국(1982), 청사출판사
그 빛 속의 작은생명, 김활란(1965), 여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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