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최초 등록일
- 2012.01.20
- 최종 저작일
-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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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사람들을 읽고 쓴 레포트입니다.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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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중세사교육(II)을 통한 여러 주제 중에 교수님께서 수업도중에 말씀을 하셨던 서원이야기가 내 눈에 들어 왔었다. 물론 여러 주제를 다룬 교수들의 이야기꺼리는 물론 훌륭하지만, 지금 내가 접하고 있는 내용이 눈에 들어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자동음성인식(TTS)가 될 정도로 교수님의 하셨던 말씀과 텍스트가 맞아 떨어져서 내용을 이해 겸 복습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레줌과 더불어서 이 책에 내용을 보니 한결 복잡했던 내용이 정리가 되면서 간단명료하게 정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당에서 항교, 서원까지]를 중점적으로 독후감을 적을려고 한다.
지금과 달리 교육의 목적이 관료 양성과 유교이념 유지에 중점적이었던 조선시대 교육은 교육은 중앙의 성균관과 사학, 지방의 향교와 서원 및 서당 등의 교육 기관에서 이루어졌다.
시대가 흐르면서 관학과 사학의 양대 체제로 확립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사학이 교육 기능의 측면에서 관학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관학은 정부 주도하에 설립된 중앙의 성균관과 서울의 사학 및 각 지방의 향교를 지칭하였고, 향교보다 늦게 사림 중심의 향촌 재지사족 세력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된 서원,서당,서재 등은 사학에 해당하였다. 지금의 학교가 공립과 사립 학교로 구분되어 있는 것과 비슷한 체제라 할 수 있다.
내용은 이미 개론에서 다루어지 내용이라서 복습하는 쪽으로 생각이 들었지만, 배우는 입장에서는 용어 등이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교생, 액내교생, 재지사족 등과 같은 용어였다. 그런데, 이런 용어에 사람의 사는 향기와 이야기를 느끼면서, 오히려 쉽게 다가온 부분이 점차 많아 졌다.
지배층만의 역사가 아니 당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역사로, 딱딱한 제도의 틀에 갇히지 않고의 실상을 알려 주는 역사로, 흥미 위주로 매몰되지 않고 과학적으로 탐구한 진실을
전하는 역사로 만드는 일 역시 하나의 `역사전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인구 증가로 인해 도시화가 진전되면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되는 것은 주택 문제와 도시 빈민 문제, 각종 환경 문제이다. 18세기 서울도 예외없이 이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서울에서는 양반 사대부들이 적당한 거처가 없는 경우에 양반 신분을 무기로 평민의 집을 빼앗아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일컬어 `여가탈입(閭家脫入)` 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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