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근현대사
- 최초 등록일
- 2012.01.10
- 최종 저작일
-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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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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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아편전쟁(1840)
태평천국운동(1851-1864)
양무운동(1862~1894)
청일전쟁(1894년)
변법자강운동(1898년)
반기독교 운동
의화단 운동(1900)
신해혁명(공화혁명)(1911~1912)
5.4 운동(1919)
중국공산당 성립(1921)
북벌전쟁(1926)
1차 국공내전(1927~ 1937)
항일전쟁(1937~1945)
2차 국공내전(1946 ~ 1949)
중국 사회주의 국가의 건국과 중화민국의 대만기지 건설(1949~1952.12)
사회주의와 삼민주의 체제로의 기본적 개조와 발전(1953.1~1956.12)
사회주의 건설의 대약진과 반공복국의 표방시기(1957.1~1960.12)
대약진의 좌절과 국민경제의 전면 조정(1961.1~1966.4)
문화대혁명과 중국문화부흥운동(1966.5~1970.9)
문화대혁명의 실패와 문혁기 중국외교․경제․사회와 문화(1970.10~1976.10)
사회주의 현대화와 대만의 본토화(1976.11~1982.12)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노선과 대만의 민주화(1983.1~1989.12)
본문내용
들어가며
오랜 역사동안 중국은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였고, 역사적으로 한때 조공을 바치며 섬기던 나라였으니 그 친밀함 정도만을 봤을 때는 중국의 역사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이 정상일 것이다. 더구나 평소에 한국 근현대사 부분만큼은 자신 있었던 터라 한국사와 그간의 현지 체험을 합쳐 중국의 근현대사를 역사적으로 하나의 연결고리로 연결하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았다. 중국의 근대 역시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적으로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입과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의 수많은 피와 눈물은 흡사 한국의 근대사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중국의 당대는 모두 새로운 정치와 경제체제, 그리고 이에 맞는 사회․교육 등 문화를 수립하여야 하였다. 즉, 대만으로 정부를 옮겨야 하였던 중국국민당의 국민 정부도 대만이라는 새로운 땅에 새 정부를 세우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고, 또한 중국공산당에게 실패한 정권이었기 때문에 정통성을 이어나가는 이외에 대륙에서와는 다른 정치를 펴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한 중국 공산당도 1921년 창단 이래 1949년에 비로서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고 권력을 장악하였기 때문에 이 체제에 맞는 정치를 펴지 않으면 안되었다. 따라서 대륙이건 대만이건 우선 첫 단계는 정권을 수립하고, 두 번째 단계는 이에 걸맞은 체제의 확립이며, 세 번째 단계는 이를 바탕으로 발전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전 건설이 순조로워 번영을 구가할 수 있으나 실행착오가 일어나게 되면 네 번째 단계는 이에 대한 조정이나 수정을 가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또한 이를 계기로 복잡한 권력 싸움이 나타나 발전에서 벼랑으로 떨어지는가 하면,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이를 바탕으로 비약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전자가 대륙에 해당한다면 후자는 대만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중국의 당대사는 체계가 다른 두 정권의 역사이기에 이를 배합하여 하나의 시기로 구분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것은 마치 중국의 현대사를 정리할 때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의 체제가 전연 다른 두 세계를 하나의 계통으로 정리하는 것과 같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두 체제가 다스리는 중국의 대륙과 대만은 거의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 이를 하나의 시기에 놓고 정리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신승하, 중국근대사, 대명출판사
코지마 신지, 마루야마 마츠유끼 공저, 중국근현대사, 지식산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