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의 생애와 시기별 작품 조사
- 최초 등록일
- 2012.01.01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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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목월의 생애와 시기적인 구분에 따른 작품세계를 엿본 간단한 레포트였습니다. 여러 참고자료를 통한 단순한레포트이니, 자료로서의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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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따뜻한 사색의 시인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
Ⅰ. 그는 누구인가?
경북 고성에서 1916년에 태어난 그는 경북 경주 월성군 서면 건천리의 모량이란 마을에서 부친 박준필씨의 4남매 중 맏이로 자라났다. 본명은 영종, 소국이라는 아호로 불리기도 했다. 부친은 경주 수리조합 이사로 근무하고 있었고, 모친은 열렬한 기독교 신앙에 입각하여 자녀들을 보살폈다.
목월의 시에 지속적으로 작용했던 자연에 대한 탐구는 집근처의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자라면서 받은 영향으로 생각된다. 목월은 1933년 미션스쿨인 대구 계성중 재학당시 17세의 나이로 동시 「통딱딱․ 통딱딱」을 《어린이》잡지에, 「제비맞이」를 《신가정》지에 본명으로 발표함으로써 동요작가로 데뷔했다.
1935년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경주금융조합에 취직해 있다가 1938년 공주 출신의 유익순과 범상치 않은 인연으로 결혼했다. 금융조합에 재직중인 1939년 《문장》지 9월호에 「길처럼」,「그것은 年輪이다」가 , 12월호에 「산그늘」이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장했다. 그 후 1940년에 이르러 《문장》지 9월호에 「가을어스름」과 「연륜」이 3회 추천 완료됨으로써 문단에 정식 데뷔했다. 경주 시절 동무였던 김동리의 존재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며, 동리와 목월의 작품에는 유년시절을 보낸 경주의 향기가 배어있다.
해방이 되면서 목월의 시작활동은 본격화되어 1946년에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집」을 간행했다. 이 무렵 동시의 창작에도 힘을 기울였다 한다. 1951년 대구에서 창설된 종군작가단의 일원이 되어 이한직, 조지훈, 오영진 등과 함께 중부전선을 종군하며 서울탈환과 평양입성 등을 함께 하며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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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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