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세계대전 원인 관련 논쟁
- 최초 등록일
- 2011.12.28
- 최종 저작일
- 2011.12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제1차세계대전 원인에 관련된 논쟁에 대해 논술 작성
목차
없음
본문내용
제시된 자료 (가)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체결된 베르사이유 231조의 내용이고 (나)는 피셔논쟁에 관한 내용이다.
흔히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서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의 한 청년에게 암살당한 사건을 이야기할 것이다. 이 사건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은 맞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유럽사회가 어떠한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었는지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하더라도 영국은 세계의 중심이었다. 1차 산업혁명의 근원지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보다 산업이 발달했고, 가장 많은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에게 위협이 될 만한 나라는 없었기 때문에 유럽 열강들 사이에서 동맹을 맺지 않고 ‘명예로운 고립’을 택하여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차 산업혁명이 전개되면서 이른바 후발 자본주의국가라 불리던 미국, 독일 등이 급부상 하였으며, 이들은 새로운 연료를 찾기 위해, 또는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식민지 건설에 열을 올리면서 많은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던 영국에게 위협이 되었다. 그리고 동아시아로 눈을 돌렸던 영국에게 러시아의 남하정책은 걸림돌이 되었고, 비스마르크 사퇴 이후 독일은 함대법을 제정하고 거대함선을 제조하는 등 해군력을 증강하는데 주력을 가하였고, 활발히 식민지를 개척하려는 세계정책을 추진하면서 영국에게 위기감을 심어주었다. 또한 보어전쟁 이후 다른 나라와의 동맹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명예로운 고립’에서 벗어나 동맹노선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비스마르크 시대에도 동맹체제가 있었다. 1870년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비스마르크는 독일 주도의 러시아·오스트리아·이탈리아와 동맹 체제를 구축하여 프랑스를 고립시켰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