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한국중세사)] [고려사회의 성격]-귀족제설과 관료제설을 중심으로

등록일 2002.10.28 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900원

목차

목 차
Ⅰ. 머리말
Ⅱ. 귀족제 사회설
1. 귀족ㆍ귀족제의 개념문제
2. 귀족제 사회설의 논거
Ⅲ. 관료제 사회설
1. 관료제 사회설의 등장 및 그 배경
2. 관료제 사회설의 논거
Ⅳ. 귀족제설과 관료제설의 논의과정
Ⅴ.맺음말

본문내용

ⅴ.맺음말

전 근대사회에 있어서 귀족제 사회에서 관료제 사회로의 전환은 여간 큰 역사적 성격의 변
화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고려시대를 관료제 사회로 보는 것은 고려가 그 전시대인 신라에 비해 그 사회성격
을 크게 달리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것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는 주장도 있으나, 큰 변화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가령 골품체제의 해체와 새로운 정
치지배세력의 광범한 등장, 과거제의 시행 성공, 그리고 '취민유도(取民有度)'로 대표되는 새
로운 대민시책(對民施策)의 실시 등은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신라의 체제가 완전히 철폐된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완전 신분을 무시한 능력 위주의 새 사회 실현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는 이러한 사회변동의 양면성을 다 같은 비중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그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될 수 있다. 음서제를 주요 논거로 하고 있는 귀족제설은
혹시라도 새로운 사회변동의 요소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골품사
회에서 문벌귀족사회로의 전환만도 여간 큰 변동이 아니다.
그러나 이와 아울러 과거제에 대한 보다 더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신라사
회에서 시행되지 못하였던 과거제가 고려 사회에서 시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왜
굳이 과거제가 필요했는가 하는 문제 등은 음서제에 못지 않은 비중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지금까지의 논쟁에서 사회변동의 양면성 중 어느 한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고려는 그 건국과정에서부터 모든 것이 공존하는 다양한 사
회였다. 그리고 문벌과 능력이 다같이 존중되던 사회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고려사회의 성격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고려사회가 과연 귀족사회
로 규정지을 수 있는지 그렇다고 해서 관료제 사회는 적당한지 이러한 의문은 사학을 관심
있어하고 특히 '한국중세사'수업을 듣는 우리들이 한번쯤 심도 있게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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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炫綱, {韓國中世史論} (신구문화사), 1989.
朴龍雲, {高麗臺諫制度硏究} (一志社), 1980.
李基白, [高麗 門閥貴族社會의 形成과 發展]{韓國學入門} 1983; {高麗貴族社會의 形成} (一
潮閣). 1990.
朴菖熙, {韓國史의 視角} (永言文化社), 1984.
金毅圭, {高麗社會의 貴族制說과 官僚制論} (知識産業社),1985
金毅圭, [高麗社會의 性格論] {韓國史論}18, 國史編纂委員會.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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