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역사] 임진왜란과이순신의활약

등록일 2002.10.26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순신은 1545년(인종1) 3월 8일 당시의 한성부 건천동에서 출생하였다.
22세에 비로소 무예를 배우기 시작하여, 28세 되던 1572년(선조5) 훈련원별과에 응시하였으나 말을 달리다 말이 넘어지며 낙마하여 왼쪽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어 등과에 실패하였다. 32세 되던 1576년(선조9) 봄에 식년무과에 출장하여 병과 제4인으로 급제하였다.
47세 때 임진왜란의 발발 1년 전인 1591년(선조24) 2월, 진도군수에 임명되었으나 부임전에 다시 가리포진 수군첨절제사에 임명, 또 부임하기도 전에 다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2월 13일 정읍을 떠나 전라좌수영에 부임하였다. 수사의 임명은 관철되었고, 추천자는 유성룡이었다. 유성룡은 이미 이율곡이 이조판서로 있을 당시 이순신의 이름을 소개한 바 있었으나, 이순신은 율곡이 자기와 성씨가 같은 문중이라 하여 그의 재직시에 찾아가기를 굳게 사양했다 한다.
이순신은 왜적의 내침을 염려하여 취임 후 바로 영내 각 진의 군비를 점검하는 한편, 후일 철갑선의 세계적 선구로 평가될 거북선의 건조에 착수하였다.
이순신은 전라좌수사의 취임 이듬해인 임진년, 즉 그가 48세 되던 1592년(선조25년) 3, 4월경에는 새로 건조된 거북선에서 지자포와 현자포를 쏘는 것을 시험하고 있었다. 이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4월 13일 드디어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직접 파병된 일본군 병력이 도합 2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의 침략전쟁이었다.
이순신은 '왜선 90여 척이 부산 앞 절영도에 대었다'는 경상우수사 원균의 통첩과 '왜적 350여 척이 벌써 부산포 건너편에 와 대었다'는 경상좌수사 박홍의 공문을 받은 즉시로 장계를 올리고, 순찰사와 병사 그리고 전라 우수사 이억기에게 공문을 보냈다(임진 4월 15일). 경상좌우도 수군은 왜군의 부산 상륙을 보면서도 전혀 싸우지 않았다. 심지어는 전의를 상실한 원균은 배와 화포와 군기를 미리 바다에 침몰시켜 버렸다고 한다(유성룡, 《징비록》).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