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과 진보]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프랑스의 혁명과 진보

등록일 2002.10.26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서론
2. 영국과의 비교
1)영국과의 대비 및 대비의 근원
2) 상업적 농업에 대한 귀족의 반응
3)계급과 관계와 절대 왕정
4)귀족의 공격과 절대 체제의 붕괴
3. 프랑스 대혁명
1)대혁명 시기 농민들과 급진주의의 관계
2)대혁명에 저항했던 농민 : 방데의 농민
3)혁명적 공포 정치의 사회적 결과
4.결론

본문내용

혁명전 상층계급은 농민들에게 지우는 부담을 늘림으로써 자본주의의 침투에 적응해 갔고 농민들로 하여금 사실상의 토지 소유에 접근하게 했다. 프랑스 사회의 근대화는 국왕을 통해 이루어졌고 그 과정의 일환으로 영국과는 전혀 다른 귀족과 부르주아지의 융합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융합은 국왕에 대한 대항이 아니라 국왕에 의해 이루어져고 상당수의 부르주아지의 봉건화를 초래했다. 이로인해 사회의 어떤 계층이 어떤 부담을 져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과 국왕의 행동 반경은 제약되었다. 귀족과 부르주아지 연합은 프랑스를 독일과 일본이 걸은 유산된 부르주아 혁명, 즉 위로부터의 보수적 근대화의 방향으로 끌어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이 보수적 근대화의 흐름을 막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길을 열었다. 토지 귀족의 근대로의 이월을 막아버림으로써 의회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던것이다. 대혁명은 산업화 이전의 면모를 벗은 상업적 농업의 발전을 대신한 부분적 대용물로서 또는 역사적인 대안으로서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이미 경제력의 지배적 우위를 차지한 부르주아지들이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부르주아 혁명이 아니라 오히려 일단의 부르주아지는 신분제와 군주제의 붕괴로 터져 나온 도시 민중과 농민들의 급진주의 운동에 편승하여 권좌에 접근하기도 했다. 혁명의 전위는 도시민중과 농민들이었다. 소규모의 재산제와 복고적인 집산주의라는 농촌과 도시의 급진주의의 공동전선은 프랑스 혁명의 핵심세력이었다. 도시 민중은 혁명이 후퇴하거나 부르주아지에게 유리한 시점에 멈추는 것을 막았고 농민들은 영주 제도의 해체를 밀고 나갔다. 그러나 도시 빈민과 혁명 군대가 식량문제로 부농들과 대립함으로써 농민들의 저항은 거세어졌고 식량공급은 단절되었다. 로베스삐에르의 혁명 정부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는 사라졌고 농민의 전선 이탈은 결국 급진주의 혁명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로써 프랑스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처럼 프랑스 대혁명은 귀족과 부르주아지 연합의 위로부터의 근대화라는 흐름을 막고 부르주아 혁명에 이르게 했고 대혁명의 핵심세력인 도시 빈민은 혁명을 심화시켰고 그들의 동반자 농민은 결국 전선에서 이탈함으로써 혁명의 내용을 결정했다. 프랑스가 근대세계로의 전환이라는 세가지 갈림길 중에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데 대혁명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었다.

참고 자료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
베링턴 무어, 진덕규 옮김, 1999년, 도서출판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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