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경장과 사회제도 개혁
- 최초 등록일
- 2011.12.15
- 최종 저작일
- 2011.12
- 1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소개글
한국사회발전사론 갑오경장 파트 요약입니다. A+ 받았습니다.
甲午更張과 社會制度 改革
-改革主體, 改革案 및 更張의 歷史的 意義에 관한 通說의 再檢討-
Ⅰ. 序 論
甲午更張은 우리나라 近代化과정의 이정표로서 人口에 회자된 지 오래이다. 특히 한국사회사 연구자에게는 경오경장은 한국사회가 ‘封建的’ 신분제사회에서 ‘近代的’ 시민사회로 전환된 획기적 계기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갑오경장을 사회사적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연구한 논자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갑오경장 때 누가 어떠한 동기로 무슨 내용의 개혁을 시도했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등에 대해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지식은 피상적이며 부정확한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목차
甲午更張과 社會制度 改革
-改革主體, 改革案 및 更張의 歷史的 意義에 관한 通說의 再檢討-
Ⅰ. 序 論
Ⅱ. 改革의 主體
Ⅲ. 開化派官僚들의 社會制度 改革構想
1) 甲午派의 社會制度 改革構想
2) 甲申派의 社會制度 改革構想
3) 貞洞派의 社會制度 改革構想
Ⅳ. 社會制度 改革案 內容
1) 班常 ․ 貴賤을 초월한 能力本立 人才登用과 平等主義的 ․ 民主主義的 社會秩序 樹立
2) 奴婢와 餘他 賤民層의 漸進的 解放
3) 庶孽의 後嗣權 獲得과 技術職 中人들의 宦路 擴張
4) 女性의 待遇 向上과 婚姻風習의 改善
5) 社會制度改革의 效果와 意義
Ⅴ. 結 論
본문내용
Ⅱ. 改革의 主體
갑오경장기간에 조선정부가 채택 ․ 발포한 여러 가지 개혁조치 중 사회제도개혁에 관한 것은 일제의 지도나 간섭을 받지 않고 조선인 스스로 추진한 ‘자율적’ 개혁이었다는 점에서 갑오경장 중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일제가 갑오경장 전반에 걸쳐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들은 이때 조선인 개화파관료가 시도한 사회제도개혁에 대해서만은 전혀 간섭한 흔적이 없다. 이 점은 주한일본공사 大鳥圭介가 1894년 7월 10일에 조선정부에 제시 ․ 요구한 5조 33항의 「내정개혁방안강목」과 그의 후임 井上馨이 그 해 10월 20~21일에 조선국정과 내각대신들에게 제시한 「이십개조개혁안」에 사회제도개혁 요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로써 증명된다.
갑오경장 때 이렇게 자율적인 사회제도개혁이 가능했던 배경을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에서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李瑄根은 갑오경장 때 추진된 반상의 계급차별 철폐, 연좌율 폐지, 과부의 개가허용, 노비 등 천민의 신분해방 등 일련의 중요한 사회제도개혁안은 원래 ‘동학반란’ 군이 선창한 것으로서 이를 ‘친일’ 개혁정부가 수용하여 추진함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류의 견해는 비단 李瑄根에 국한되지 않고 1960년대 이 후 남 ․ 북한 학계에서 출간된 주요 개설서에서 두드러지게 표출되어 일종의 통설로 굳어져 가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1977년에 평양의 과학원 역사 연구소에서 펴낸 『조선통사(하)』를 보면, 그 갑오경장 서술부분에서 “물론 이 「개혁안」들의 많은 부분은 표면상 직접 1894년 갑오농민전쟁에서 표시된 바와 같이 당시 조선인민들의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요구(갑오농민전쟁에서의 폐정개혁요구안 등 기타)를 일정하게 반영하였던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1989년 서울
참고 자료
한국사회발전사론, 일조각,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