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사림의 지치주의론
- 최초 등록일
- 2011.12.12
- 최종 저작일
-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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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성리학
목차
□ 머리말
□ 본론
1. 道學政治
2. 王道 專一 이념의 추구
3. 己卯士林의 이념과 현실
□ 맺음 말
본문내용
王道정치란 것은 워낙 이상적인 것이므로 그 이상을 구체적 현실에 적용하려할 경우 항용 이념적인 논란이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그 구체적 사례의 하나로, 束古乃는 중종 7년에 함경도 甲山지방에 몰래 쳐들어와 조선 측 사람과 가축을 노략질해간 여진족 추장인데, 조정의 시책에 따라 현지에 파견된 장수가 저들의 다른 부족을 동원하여 여러 차례 잡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는 자였다. 그런데 중종 13년에는 그가 다시 들어와 사냥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三公과 兵曹 및 知邊事宰相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였다. 논의 결과 “지모와 방략이 있으며 또 강하고 용감하다”는 장수 李之芳을 급히 파견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다음 날 그를 파견하려는 자리에서 조광조가 王道主義 이념을 피력함에 따라 이 일이 중단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날 司諫院도 합의로 “王者가 夷狄을 대함에는 誠․信으로 해야 합니다... 적들이 우리에게 침범해 오면 부득이 응해야 합니다...”라고 아뢰었다.
이 사안은 조선 성리학이 국가 통치의 방식을 두고 政治와 道德을 어떻게 조화 시킬 것인가를 논의한 전형적 사례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국경 안에 들어온 外賊의 처치 계책을 논의 하면서도 ‘奇謨’의 용병을 할 것인가 혹은 王道이념 그대로 오로지 ‘仁․義’로써만 대응할 것인가의 견해가 현격히 다르게 드러난 대목이다.
그리고 己卯士林 자신이 大臣위임 통치제를 솔선 회복한다 해놓고서도 議政府 大臣들이 논의 채택한 구체적 用兵術을 놓고 새삼 ‘詐欺의술책’이라거나 ‘覇術이라고도 할 수 없는 詐欺’에 불과한 것이라고 논단하는 것 자체가 아무래도 ‘王道 專一이념’의 과잉 발상인 사례로 해석된다.
己卯士林의 至治주의 운동은 의정부 중심의 통치체제에 따라 추진되는 형태가 아니라 주로 己卯士林이 포치되어 있는 三司의 ‘公論’을 통해서 추진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더구나 中宗反正에서 靖國공신으로 책훈된 자들 가운데의 僞勳者를 도태 시키자는 논의는 功臣들의 안위와 이익에 직접 관련된 사안이므로 당시의 정국을 뒤흔들면서 진행 되었다. 靖國공신은 1등 8인 등 4등까지 도합 117명으로서, 역대 공신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기록하는데, 그 가운데는 공로가 전혀 없는 그들의 子弟, 姻戚들 까지 다수 포함 되어 있었다.
참고 자료
김태영 저, 경희대출판국, 조선성리학의 역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