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고전에서만나는리더(조광조)
- 최초 등록일
- 2011.12.12
- 최종 저작일
- 2011.12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소개글
1. 조광조를 소개합니다.
조광조(趙光祖) : 1482(성종13년) ~1519(중종14년)
조선중기의 문신
*본관 : 한양
*호 : 정암(靜庵)
*자 : 효직(孝直)
*시호 : 문정(文正)
*활동분야 : 정치
*주요저서 : 《정암집》
목차
-목차-
1. 조광조를 소개합니다.
2. 생애
3. 시대적 배경
4. 정치사상
5. 업적
6. 기묘사화에 대해
7. 나의 견해
본문내용
중종반정(中宗反正)이후 그 당시 상황은 매우 불안정 하였으며, 조선왕조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었다. 연산군(燕山君)을 축출하는 것에 대하여는 누구나 그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 이후의 정국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정치력을 누가 어떻게 발휘해야 하느냐라는 문제에 대하여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중종(中宗)은 왕이었다고는 하지만 연산군(燕山君)을 폐위시킨 반정(反正)의 주역들에 의해서 옹립된 왕이었으므로 그가 연산군(燕山君)에 이어 조선의 왕위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구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배경이 전혀 없었다. 중종(中宗)의 치세가 10년을 넘기기도 전에 5차례 이상의 역모사건이 발생하였다는 것은 이 시기의 왕권이 그만큼 불안정하였음을 잘 말해주고 있는 예라 볼 수 있다.
또한 반정(反正)의 주역들은 조정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기는 하였지만, 이런 권력을 유지해 가고 이를 바탕으로 왕조의 정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정치적, 이념적인 기반이 너무나 취약하였다. 이들이 자신들의 군주였던 연산군(燕山君)을 축출했던 사건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연산군(燕山君)대에 희생되었던 많은 유학자들을 복권 시키고 그들을 등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이들은 반정(反正)의 공로를 포상하는 과정에서 이를 사적인 이해를 확대하는 기회로도 이용하였다. 이것이 대간을 중심으로 한 사림들의 맹렬한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고, 이러한 점 때문에 이들은 쿠데타를 성공하였으면서도 반정(反正)이후의 정국을 이끌어 갈 정치력은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