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백범김구와 남북협상
- 최초 등록일
- 2002.10.23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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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백범 김구선생
2. 남북협상
3. 김구선생을 통해 본 남북협상
본문내용
백범어록 中<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에서 백범은 “현시에 있어서 나의 유일한 염원은 삼천만동포와 손목 잡고 통일된 조국, 독립된 조국의 건설을 위하여 공동 분투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 하겠다.”고 동포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백범은 처음부터 통일조국을 건설하지 않고 38선의 남북에 각각 두개의 정부를 수립하면. 남북 분단이 고착되고 동족상잔의 내전이 일어나지 안을까 매우 염려하였다. 그래서 백범은 남북협상을 통한 연립정부 통일론이 비현실적이더라도 민족의 의무고 지상명령이기 때문에 현실만을 볼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내다보며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남북이 이념과 이권에 따라 서로 분열하고 있는 시점에서 협상을 성과적으로 실현하려면 북조선의 민주주의 민족통일전선사업을 백방으로 강화하고, 북조선의 각 정당, 사회단체들이 서로 긴밀히 협조하고 단결을 강화해 전체 인민들을 나라의 통일 독립과 민주건설을 위한 투쟁에로 힘 있게 불어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남북협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 선전사업을 잘 해서 남북의 애국적민주력량을 높여, 미.소의 음모를 폭로분쇄해야 한다고 하였다. (백범어록 1947년 10월 3일 남북 협상방안에 대하여)
그러나 김구의 바람과는 달리 남북협상은 아무 효과도 얻지 못한 채 결렬되어버렸고, 오히려 남북협상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대한민국정부 수립과정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더불어 극우 반공세력들은 회담이 북한의 정통성 선전에만 이용을 당하였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해방공간에서 평화적으로 통일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길이 옳았고,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이 민족사회와 세계평화를 위해 불행한 일이었음은, 백범이 예고한 그대로 6.26전쟁이 터짐으로써 바로 입증되었다.
평생을 민족 독립을 위해, 해방된 조국을 민족, 통일 민주문화의 바탕 위에 굳건히 세우려고 애쓰다가 비명에 간 백범 김구선생의 행보는 그간 상황에 따라 조금씩 곡해되기도 하였지만 그는 역사 속에서 한국민족의 영원한 큰 스승으로 기억될 것이다.
참고 자료
• <백범일지> - 돌베개
• 백범어록
• 사단법인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www.kimkoo.or.kr)
• 국제연합한국위원회 (United Nationals Commission on Korea) 자료